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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萬物相- 겨울 금강산의 백미

향기男 피스톨金 2006. 1. 26. 15:30

 

   금강산, 萬物相- 겨울 금강산의 백미


아버지는 평생 그곳을 입에 달고 사셨다. 민통선 너머 북쪽으로 뜀박질 한 시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고향 땅.
 
동네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금강산 어느 봉우리 밑자락이라는 말로 충분했다.

봄이면 더벅머리 초등 학생들은 손에 손을 잡고 금강산으로 소풍을 갔다. 꼭 봄뿐이었으랴. 여름엔 개울물에 아무렇게나 터를 잡고 물장구를 쳤다.
 
가을엔 망태기를 들고 도토리나 밤톨을 주웠다. 겨울엔 금강산 낮은 둔덕을 골라 ‘투둑’ 터진 손등을 호호 불어가며 볼 가에 김이 모락모락 날 때까지 썰매를 제쳤을 것이다.

10년 전쯤인가. 갑자기 스키장에 따라 가시겠다고 하셨다. 그 연세에 힘들 거라고 말렸지만 어릴 적 금강산에서 스키를 탄 적이 있다고 했다.
 
강냉이 죽으로 겨우 끼니를 때울 그런 시절에 무슨 스키였을까 했지만 대나무에 새끼줄을 엮어 금강산 언덕에서 다들 스키를 탔다는 말로 일축해 버렸다. 초급자 리프트 정상에서 한걸음 내딛던 아버지는 결국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50년이란 세월의 무게는 어릴 적 금강산 추억을 되살리기엔 너무나 무거웠다.

그러던 아버지는 6년 전인가 드디어 금강산에 오르셨다. 평생 가슴 속에 묻고 갈 봉우리로 여겼던 금강산 문이 열린 것이다.
 
내금강은 아직 남쪽에 개방하지 않았지만 만물상을 볼 수 있는 외금강과 동해로 이어지는 해금강은 맘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휙’하니 다녀 올 수 있는 그런 곳이 됐다.

금강산에 다녀온 후로 아버지의 향수병은 식었지만 ‘꼭 한번 금강산에 가보라’는 성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결국 그 채근에 못 이겨 지난 연말 금강산에 올랐다.
 
“얼마나 대단한 산이기에….” 그렇고 그런 명승지에 대한 입바른 호들갑에 사실 실망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겨울 금강산은 다른 계절에 비해 조금은 처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다고 하는 그 경치마저도 금강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기엔 실로 차고도 넘쳤다.
 
집채만한 돌덩이들이 소나무 줄기에 줄줄이 꿰어진 듯 늘어선 연봉은 버스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만으로도 기가 눌린다. 수천개의

기암 절봉들은 마치 쾰른 대성당의 고딕 지붕들처럼 서로 뒤질세라 하늘을 찌를 듯 기세를 올린다.

눈이라도 쌓이면 개골산은 금세 설봉산으로 변한다. 세밑 금강산엔 ‘펑펑’ 눈이 쏟아졌다.
 
동해안이 모두 가뭄이 들어 땅이 쩍쩍 갈라졌다 하는데 을유년(乙酉年)을 눈 한 방울 없이 그냥 보내기가 금강산은 서운했다 보다.

만물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선대에서 만난 북한 여자 안내원 손수련씨는 “나무 가지를 하얗게 수놓을 정도의 눈은 이번 겨울 들어 처음”이라며 “복 받은 날”이라고 했다.
 
만물상, 구룡연, 수정봉, 삼일포 등 우리에게 개봉된 금강산 코스 가운데 설봉산의 진수를 만끽 할 수 있는 길은 단연 만물상 등산로다.

금강산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격인 온정리를 떠난 버스는 북한 주민들이 자주 찾는 온천장을 지나 만물상으로 향했다. 눈가루가 날리는 꼬부랑 산길을 설설 긴 버스는 만상정 주차장에서 관광객들을 쏟아냈다.

삼선암과 절부암을 지나 만물상(931m)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는 천선대로 향하는 등산객들은 백색 눈가루와 흑갈색 암봉 속에 섞여 물아일체 진풍경의 주인공이 됐다.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설봉은 화려함을 더해 백옥 빛 환희로 치닫는다. 눈 안개 속에 불쑥 불쑥 솟아나는 기암절벽은 요지경 속 입체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금강산 절경에 취한 선녀들이 발걸음 떼는 것을 아쉬워 했다는 천선대를 내려오면 하늘문을 거쳐 수십길 낭떠러지 같은 계단으로 이어진다.

온몸은 후끈거리는 땀방울에 흠뻑 젖어 있지만 눈꽃에 취한 마음만은 마치 선녀의 날개를 단 것처럼 가볍다.
 
누가 겨울 금강산에 초라한 개골산(皆骨山)이란 이름을 붙였던가. 백색 절경의 잔칫상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금강산은 병술(丙戌)년 새해벽두 온 세상을 향해 그렇게 새하얀 초대장을 뿌려댔다.

금강산=글ㆍ사진 홍병문 기자 hbm@sed.co.kr
서울경제 200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