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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해금강,萬物相- 겨울 금강산의 백미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6. 12:02

 

         

         萬物相- 겨울 금강산의 백미

 

 

[서울경제 2006-01-11 14:27]    

아버지는 평생 그곳을 입에 달고 사셨다. 민통선 너머 북쪽으로 뜀박질 한 시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고향 땅. 동네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다. 금강산 어느 봉우리 밑자락이라는 말로 충분했다.

봄이면 더벅머리 초등 학생들은 손에 손을 잡고 금강산으로 소풍을 갔다. 꼭 봄뿐이었으랴.
 
여름엔 개울물에 아무렇게나 터를 잡고 물장구를 쳤다. 가을엔 망태기를 들고 도토리나 밤톨을 주웠다. 겨울엔 금강산 낮은 둔덕을 골라 ‘투둑’ 터진 손등을 호호 불어가며 볼 가에 김이 모락모락 날 때까지 썰매를 제쳤을 것이다.

10년 전쯤인가. 갑자기 스키장에 따라 가시겠다고 하셨다. 그 연세에 힘들 거라고 말렸지만 어릴 적 금강산에서 스키를 탄 적이 있다고 했다. 강냉이 죽으로 겨우 끼니를 때울 그런 시절에 무슨 스키였을까 했지만 대나무에 새끼줄을 엮어 금강산 언덕에서 다들 스키를 탔다는 말로 일축해 버렸다.
 
초급자 리프트 정상에서 한걸음 내딛던 아버지는 결국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50년이란 세월의 무게는 어릴 적 금강산 추억을 되살리기엔 너무나 무거웠다.

그러던 아버지는 6년 전인가 드디어 금강산에 오르셨다. 평생 가슴 속에 묻고 갈 봉우리로 여겼던 금강산 문이 열린 것이다. 내금강은 아직 남쪽에 개방하지 않았지만 만물상을 볼 수 있는 외금강과 동해로 이어지는 해금강은 맘만 먹으면 내일이라도 ‘휙’하니 다녀 올 수 있는 그런 곳이 됐다.

금강산에 다녀온 후로 아버지의 향수병은 식었지만 ‘꼭 한번 금강산에 가보라’는 성화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결국 그 채근에 못 이겨 지난 연말 금강산에 올랐다. “얼마나 대단한 산이기에….” 그렇고 그런 명승지에 대한 입바른 호들갑에 사실 실망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겨울 금강산은 다른 계절에 비해 조금은 처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떨어진다고 하는 그 경치마저도 금강산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기엔 실로 차고도 넘쳤다. 집채만한 돌덩이들이 소나무 줄기에 줄줄이 꿰어진 듯 늘어선 연봉은 버스 창문을 통해 바라본 풍경만으로도 기가 눌린다. 수천개의

기암 절봉들은 마치 쾰른 대성당의 고딕 지붕들처럼 서로 뒤질세라 하늘을 찌를 듯 기세를 올린다.

눈이라도 쌓이면 개골산은 금세 설봉산으로 변한다. 세밑 금강산엔 ‘펑펑’ 눈이 쏟아졌다. 동해안이 모두 가뭄이 들어 땅이 쩍쩍 갈라졌다 하는데 을유년(乙酉年)을 눈 한 방울 없이 그냥 보내기가 금강산은 서운했다 보다.

만물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천선대에서 만난 북한 여자 안내원 손수련씨는 “나무 가지를 하얗게 수놓을 정도의 눈은 이번 겨울 들어 처음”이라며 “복 받은 날”이라고 했다.
 
만물상, 구룡연, 수정봉, 삼일포 등 우리에게 개봉된 금강산 코스 가운데 설봉산의 진수를 만끽 할 수 있는 길은 단연 만물상 등산로다.

금강산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격인 온정리를 떠난 버스는 북한 주민들이 자주 찾는 온천장을 지나 만물상으로 향했다. 눈가루가 날리는 꼬부랑 산길을 설설 긴 버스는 만상정 주차장에서 관광객들을 쏟아냈다.

삼선암과 절부암을 지나 만물상(931m)이 한눈에 내려 보인다는 천선대로 향하는 등산객들은 백색 눈가루와 흑갈색 암봉 속에 섞여 물아일체 진풍경의 주인공이 됐다. 발걸음을 내딛을수록 설봉은 화려함을 더해 백옥 빛 환희로 치닫는다. 눈 안개 속에 불쑥 불쑥 솟아나는 기암절벽은 요지경 속 입체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금강산 절경에 취한 선녀들이 발걸음 떼는 것을 아쉬워 했다는 천선대를 내려오면 하늘문을 거쳐 수십길 낭떠러지 같은 계단으로 이어진다.

온몸은 후끈거리는 땀방울에 흠뻑 젖어 있지만 눈꽃에 취한 마음만은 마치 선녀의 날개를 단 것처럼 가볍다. 누가 겨울 금강산에 초라한 개골산(皆骨山)이란 이름을 붙였던가. 백색 절경의 잔칫상을 풍성하게 차려놓고 금강산은 병술(丙戌)년 새해벽두 온 세상을 향해 그렇게 새하얀 초대장을 뿌려댔다.

금강산=글ㆍ사진 홍병문 기자 hbm@sed.co.kr

 

 

              금강산에서 가볼만 한 곳

 

[서울경제 2006-01-11 14:27]    

수정봉 전망대 서면 동해가 품속으로


■금강산 수정봉

개방된 금강산 코스 가운데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비경 가운데 하나가 수정봉(773m)이다. 수정봉은 햇살에 비친 모습이 수정처럼 빛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수정봉엔 수정이 많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수정봉 등산길은 온정리에서 만물상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서 시작한다. 왕복 4시간 코스로 비교적 길지 않은 코스지만 정상 부근의 경사는 만물상 코스보다 오히려 가파르다.
 
정상 직전의 수정문을 오르려면 60도가 넘는 가파른 철 계단 길을 서너 차례 올라야 한다. 돌문인 수정문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동해안과 관광객 숙소인 해금강호텔ㆍ금강산비치호텔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수정봉 전망대와 멀리 동해안 사이엔 거대한 바나나 다발을 연상케 하는 돌산 바리봉이 우뚝 서있다. 수정봉 서북쪽에는 집선봉, 채하봉, 중관음봉, 상관음봉의 연봉들이 장엄한 산세를 자랑한다.
 
정상 위의 겨울 바람은 쇳덩이라도 날려 버릴 기세여서 온 몸을 바닥에 납작 붙여야만 한다. 수정봉에서 보는 일출은 비로봉 못지않은 장관이라고 한다.

온천장서 몸풀고 옥류관 분점 냉면 ‘후르륵’



■금강산 온천장과 평양옥류관 금강산 분점


금강산 여행객들이 각 코스별 산행을 하기에 앞서 한데 모이는 온정리는 예로부터 온천으로 유명하다. 온정리라는 마을 이름도 온천에서 유래했다. 매바위산 아래에 위치한 금강산 온천장은 금강산 등산을 마친 뒤 하루 피로를 풀기에 적격인 곳이다.
 
 8,000평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000여명이 동시에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비로봉 등 금강산 줄기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은 놓치면 후회할 만한 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지만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온천을 마친 뒤 먹는 저녁이나 점심은 황제상 부럽지 않다.
 
온정리에는 평양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옥류관 냉면을 맛볼 수 있는 평양옥류관 금강산 분점이 자리잡고 있다. 본점에서 파견한 요리사와 접대원들이 금강산에 상주하며 옥류관의 맛과 멋을 그대로 재현한다.

옥류관 명물인 물냉면 가격은 12달러(약 1만 2,000원)며 쟁반냉면은 15달러다. 물냉면 맛은 자극이 적고 담백하다. 쟁반냉면은 비빔냉면과 비슷하지만 소ㆍ돼지ㆍ꿩ㆍ닭 등 4가지 고기를 넣은 탕국 위에 면이 어우러진다.

홍병문기자
hbm@sed.co.kr
 
 
 

             진짜 '해금강'에 다녀왔어요

 

 

[오마이뉴스 2006-02-06 10:14]    
[오마이뉴스 서종규 기자]
▲ 금강산 해금강 앞 바다 바위섬 사이를 고깃배들이 넘나듭니다.
ⓒ2006 서종규
학생 시절엔 늘 혼란스러웠지요. 해금강이 거제도에 있다니요. 해금강은 분명 금강산에 있는데 말이죠. 거제도에만 해금강이 있나요? 아니죠. 전국 바닷가의 바위가 유명한 곳은 해금강이라 이름한 곳이 많이 있어요. 거제도를 비롯하여 강원도, 백령도, 제주도까지 해금강이라 불리는 곳이 많이 있으니 혼란스럽지 않겠어요.

그랬지요. 고교시절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중요한 탐방지가 고성에 있는 통일 전망대였지요. 군부대 안내원이 나와서 저 멀리 낙타봉이네, 구선봉이네, 그리고 그 아름답다던 해금강, 해금강이라고 하면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만 보았던 바다. 망원경으로 보아야 하는데, 단체로 온 학생들에겐 차지도 되지 않고. 그렇게 새겨진 기억 속의 바다가 해금강이었지요.

▲ 금강산 해금강에 바위가 만들어낸 절경
ⓒ2006 서종규
경남 거제도에 가면 해금강이라고 있어요. 원래는 칡이 많다고 해서 갈도라고 했으나 금강산의 해금강과 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해금강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섬, 아침해가 동해에 뜨면 천태만상의 만물상이 장관을 이룬다고 해금강이라고 하였다지요.

해와 달이 이 곳 바위 위에서 뜬다고 하여 일원관암, 병풍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병풍바위, 신랑 신부가 마주 서서 전통결혼식을 올리는 모습과 같다하여 신랑신부바위, 돛대바위, 거북바위, 미륵바위 등 유람선에서 관광을 안내하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아요.

▲ 설명이 필요 없는 금강산 해금강 바닷가의 모습입니다.
ⓒ2006 서종규
동해시와 삼척시의 경계 해안에 절묘하게 걸쳐 위치해 있는 추암 촛대바위, 바다에 일부러 꽂아놓은 듯 뾰족하게 솟아 있는 촛대바위는 뛰어난 경승으로, 조선 세조 때 한명회가 강원도에 있으면서 추암에 와보고는 그 경승에 취해 '능파대'라 부르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촛대바위도 해금강으로 통해요.

제주도 성산포에 있는 외돌개도 서귀포 해금강이라고 부른대요. 서귀포 칠십리 해안가를 둘러선 절벽기암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20m높이 의 기둥바위 외돌개, 약 150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섬의 모습을 바꿔놓을 때 생성되었다는 바위로 뒤에 보이는 범섬에 석양이 어릴 때의 경관은 더없이 장엄하다고 하죠.

백령도 두무진도 해금강으로 불러요. 두무진은 백령면 연화3리 해안지대인데, 신선대, 형제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푸른 바닷물과 어울려 아름다운 비경을 이룬다지요. 장군들이 모여 회의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두문진이라고 했대요.

▲ 하얗게 눈이 쌓인 논과 멀리 금강산의 모습입니다.
ⓒ2006 서종규
1월 27일 오전 8시20분, 교사 금강산체험연수 3일째, 해금강과 삼일포 탐방에 나섰어요. 금강산에 가 보신 분은 알겠지만 3일째에는 보통 만물대와 해금강-삼일포 중 택하여 탐방에 나서게 되지요. 만물대의 유혹을 느끼면서도 해금강과 삼일포 탐방에 올랐어요.

해금강 가는 길은 북한의 민가를 지나가게 되었어요. 더구나 해금강은 북측 민간인들도 들어 갈 수 없는 곳이랍니다. 왜냐하면 군사 통제지역이잖아요. 우리들도 고성 통일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니 말이죠. 금강산에서 차로 이동할 때에는 꼭 북한 군인들이 길목에서 경비를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답니다.

▲ 내리 쬐는 햇살이 동해에 가득합니다.
ⓒ2006 서종규
들판 가득 하얀 눈이 쌓여 있었어요. 그 하얀 들판이 저 멀리 금강산까지 이어지니 내려서 한 번 정도 들판에 발자국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차량 이동 중에는 절대 사진 촬영을 금한다는데, 내려서 들판을 거닐어 볼 수가 있겠어요?

해금강 가는 길에서 본 민가의 모습도 반갑기 그지없었습니다. 학교도 보였고, 체신분소도 보였어요. 여러 채의 집들, 조그마한 웅덩이에서 미끄럼 타는 아이들, 자전거 타고 어디에 가는 사람들, 차가 가까이 다가가면 주민들이 뒤로 돌아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아쉬웠어요.

▲ 해금강에 우뚝 솟은 향로봉입니다.
ⓒ2006 서종규
안타까움을 알았던지 '강' 조장이 김 삿갓의 시 한 편을 읊었습니다. 김홍도가 금강산을 화폭에 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가던 김 삿갓이 김홍도를 비꼬아 표현한 시라는데, 강 조장의 구성진 목소리로 금강산이 더 살아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걸음마다 넋을 읽고 바라보니
산은 푸르고 바위는 흰데
사이사이엔 꽃이 반겨 웃는구나.
만약 화공에게 저 경치를 본 떠
그림을 그려라 한다면
숲 속의 저 새소리와 바람소리는
어떻게 그린단 말인가?

▲ 해금강의 만물상이라고 합니다.
ⓒ2006 서종규
8시50분, 해금강은 막혔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주었습니다. 솟아 오른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 눈치 보듯 조용히 바닷가에 와서 부서지는 파도, 금강산 봉우리들의 뾰쪽뾰쪽함을 그대로 간직한 바위들, 시원한 동해 바다, 그리고 바위섬 사이에서 고기 잡는 배, 모두 한 폭의 그림이었습니다.

“해금강 구역은 현 위치인 해만물상을 중심으로 동해안을 따라서 북으로는 총석정과 국도, 남으로는 입석과 영랑호, 송도, 현종암 등으로 이루어진 약 60km 구간을 통틀어서 일컫는다. 해금강 구역은 바다의 금강이란 뜻으로 예로부터 많은 시인, 화가, 선비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전설 또한 숱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해금강 안내문 중에서>

▲ 해금강, 참 멋있죠?
ⓒ2006 서종규
그렇군요. 우리가 서 있는 곳은 해만물상인 것을, 해금강 60km를 다 다녀보아야 하는데, 최소한 총석정과 영랑호 정도는 보아야 하는데, 그래야만 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송강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의 느낌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아쉬운 마음이 물결에 실려 출렁거렸습니다.

향로봉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닷가에 우뚝 솟은 봉우리, 역시 해금강이라는 말이 나올 만한 절경이었지요. 첩첩 쌓인 바위 봉우리에 해송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커다란 돌 위에 분재를 해 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어요. 구룡폭포 입구의 미인송과는 다른 바다 소나무의 멋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군사 통제구역이라서 해만물상은 촬영이 금지된 구역이었어요. 그 옆에 군사 진지가 있어서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곳인가 봐요. 그래서 그 곳은 갈 수도 없었구요. 그래도 바위의 절경이 한 눈에 들어 왔어요. 바위가 아름다운 곳들을 해금강이라고 했던 남쪽 지역의 모습들이 떠올랐어요.

▲ 해금강에서 돌아서려니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6 서종규
향로봉을 한바퀴 돌아 나오면서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그 사이에 떠 있는 조그마한 바위섬들이 한가로웠어요. 겨울 바다였어요. 그냥 동해 바다였구요. 학생 시절 통일전망대에서 눈 크게 뜨고 바라만 보았던 해금강에서 동해 바다를 보고 있다구요.

동해바다는 모두 똑같았어요. 물론 바닷가도 똑같았구요.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통일전망대에 도착하겠지요. 조그마한 바위섬 사이에 고깃배들이 한가로웠어요.
 
저 배를 타고 몇 번만 저으면 통일전망대 앞에도 갔다 올 수 있겠더라구요. 물고기들은 서로 넘나들겠지요. 갈매기들도 마찬가지고. 삼일포로 가야 된다고 안내원이 이끌 때까지 해금강에서 동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 바위와 바다, 모두 한반도 동해에 있습니다.
ⓒ2006 서종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