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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조선족/‘신조선족’의 도전…‘코리안드림’ 넘어 세계로 진출

향기男 피스톨金 2007. 9. 11. 10:16

 

                 ‘신조선족’의 도전…

 

         ‘코리안드림’ 넘어 세계로 진출

 

 

베이징에서 의료기기 회사를 운영하는 조선족 남용(50)씨는 중국 정부도 알아주는 중견 기업인이다. 약탕기를 만드는 그의 회사는 지난해 중국의 우수 중소기업 가운데 하나로 뽑혔다. 무역상으로 한국을 드나들면서 건강관리 시장이 커지는 것을 보고, 직접 공장을 차린 모험이 성공했다. 그는 요즘 고성능 체온계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족 김계화(27)씨는 얼마 전부터 일본어 공부에 빠져 있다. 선양에서 태어난 그는 다롄의 한국계 부동산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회사가 망하자 베이징으로 자리를 옮겨 일본계 실내장식 회사에 취직했다. 거기서 그는 플라스틱 꽃으로 실내를 꾸미는 새로운 사업에 눈을 떴다. 그는 이참에 일본으로 건너가 조화 디자인을 공부할 작정이다.

 

조선족들의 꿈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 조선족 사회를 통째로 뒤흔들었던 ‘코리안 드림’은 여러 소망 가운데 하나로 퇴색했다. 이젠 한국보다 넓은 중국에서, 한국보다 앞선 외국에서 승부를 걸려는 이들이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들 ‘신조선족’의 도전은 멀리 아프리카와 남미에까지 뻗친다.

 

» 한-중 수교 이후 조선족의 이동

신조선족은 한국보다 중국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한국에서 푼돈을 벌기보다는 중국에서 목돈을 쥐겠다는 야망을 불태운다. 서영빈(54) 중국 대외경제무역대 교수는 “머리가 깨인 조선족들은 이제 중국에서 더 큰 성공을 잡으려 한다”며 “그들은 한국에 ‘의존’하기보다는 한국과 ‘경쟁’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톈진이나 칭다오에선 조선족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칭다오에선 주변 대형 식당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에서 조선족 손으로 넘어갔다.

 

베이징의 ‘코리아 타운’으로 불리는 왕징의 일부 지역은 돈을 번 조선족들의 거주지로 변하고 있다. 왕징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조선족 박옥란(34)씨는 “집을 서너 채 갖고 한국인들을 상대로 임대업을 하는 조선족들도 꽤 된다”고 말했다.

 

신조선족은 중국 밖에서도 싹트고 있다. 최근 영국 런던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교수는 “런던 시내에서 한식당 간판을 보고 들어갔더니 주인이 조선족이었다”고 말했다. 조선족 이아무개(35)씨는 일본에서 유학한 뒤 무역회사를 차려 중국인 친구까지 불러들였다. 조원진 세계해외한인무역협회 중국 회장은 “무역업을 하는 조선족 기업가들이 베이징에 따로 사무실을 낼 정도로 힘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족의 세계화는 중국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해외로 나간 조선족은 모두 35만~45만명에 이른다. 전체 조선족의 20%에 해당하는 숫자다. 한국에 17만명, 일본과 미국, 러시아에 각각 4만~5만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엔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어느 소수민족도 이처럼 급속하고 거대한 해외 유출을 경험하지 못했다.

» 중국 연변 조선족자치주 중심가에 있는 롯데리아 앞을 시민들이 거닐고 있다. 조선족들 사이에선 한국에서 맛본 패스트푸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신조선족은 저임 노동자로 외국을 스쳐가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유학, 국제결혼, 불법체류 등의 여러 수단을 동원해 현지 정착을 시도한다. 서 교수는 “한국이라는 ‘친숙한 외국’과 접하면서 해외에서 뿌리를 내리는 데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린 덕분”이라고 풀이했다. 이들이 외국에서 벌어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보내는 송금액만 해마다 7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의 세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리강철 일본 호꾸리꾸대 교수는 최근 동포신문 <흑룡강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조선족이 지역에서 중국으로, 이어 세계로 뻗어가는 단계를 밟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의 정체성은 국제적인 범위로 확대된다. 미국 뉴욕에 정착한 조선족들은 자신을 ‘코리안 차이니스 아메리칸’(Korean Chinese American)이라고 부른다.

한겨레신문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 조선족 거주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