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사는 이야기/하얼빈은 지금 어떤일이?

죽음의 벤젠 쑹화강 하얼빈

향기男 피스톨金 2005. 11. 25. 10:53
'죽음의 벤젠' 오염된 중 쑹화강… 하얼빈 현장 르포
[조선일보 2005-11-25 09:31]    

탈출인파로 기차역 아수라장
버스·비행기표 매진… 고립의 도시로
생활용수 없어 백화점 화장실 30명 줄
오염띠 80㎞… 일부는 강바닥에 쌓여

[조선일보]

“밀지 말고 줄 서요, 줄!”

24일 오후 7시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기차역의 환송표 판매 창구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반경 30㎝ 크기의 매표 창구 구멍으로 3~4명이 한꺼번에 1위안짜리 지폐를 쥔 손을 판매원에게 들이밀고 있었다. 그들 뒤로도 100여명이 뒤엉킨 채 표를 구하기 위해 아우성치고 있었다. 정식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플랫폼까지 들어갈 수 있는 환송표를 사서 일단 기차에 올라탄 뒤 승무원에게서 표를 구입하려는 것이었다.

창구 앞에서 질서 유지를 맡고 있던 경비원은 “평상시에는 줄을 서봐야 4~5명인데, 사흘 전부터 이 창구가 전쟁터로 변했다”고 말했다.

식수원(食水源)인 쑹화(松花)강의 벤젠 오염으로 단수(斷水) 이틀째를 맞은 하얼빈시는 비상상태였다. 쑹화강의 오염은 지난 13일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380여㎞ 떨어진 지린성(吉林省) 지린시의 중국석유천연가스그룹(CNPC)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면서 시작됐다. 오염띠는 80㎞에 이른다. 제2 쑹화강 부근에서 학교가 문을 닫고 상업활동이 부분적으로 중단됐는가 하면 시 외부로 나가는 기차·시외버스표가 완전 매진됐다. 비행기표는 일찌감치 동났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을 우려한 일부 시민들이 도시를 떠나기 시작한 것이 이날 들어서는 ‘탈출 러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로 하얼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급감했다.


23일 자무쓰(佳木斯)에서 하얼빈으로 오는 밤 기차를 탄 조선족 동포 김광욱(金光旭)씨는 “내가 탄 열차의 큰 객실에 승객이 7명밖에 없었고 나머지 자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면서 “항상 만석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난생 처음”이라고 말했다. 하얼빈으로 들어오는 비행기표는 30~40% 할인됐으나 나가는 표는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인구 약 1000만명의 하얼빈시는 중국 동북 3성(省) 최대 도시. 용수난에 직접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은 300여만명이 거주하는 시 중심부다. 식수보다는 생활용수 문제가 훨씬 심각했다. 대다수 주민들은 단수 직전 정부 고시에 따라 식수를 받아놓았기 때문에 먹는 물은 그럭저럭 해결하고 있으나 목욕물 등 생활용수는 절대 부족 상태다. 서민들의 밀집 거주지역인 다오와이(道外) 주택가의 공중 화장실 앞에는 10여명씩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의 온도는 영하 12도를 넘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고급 백화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날 오후 1시쯤 톈디(田地)가의 진타이양(金太陽) 백화점 2층 여자 화장실 입구에는 30여명의 여성 고객들이 몰려 있었다. 네 칸의 화장실 중 한 칸만 개방한 데다 한 명이 볼 일을 마칠 때마다 청소부가 물을 부어 변기를 씻어 내리기 때문에 계속 밀린 것. 용수 사정이 계속 악화되자 시내 대부분 백화점들은 오후 8~9시까지였던 영업시간을 이날부터 오후 3시로 대폭 단축했다. 고급 호텔들도 이날부터 이틀 이상 투숙 고객들에게 시트를 갈아줄 수 없다고 통보하는 등 비상 영업에 들어갔다.

식수는 23일까지 육로를 통해 1만6000t이 수송됐고, 외부 생수업체들이 하얼빈으로 생수를 집중 공급하면서 정상을 되찾고 있었다. 생수 판매도 정상을 회복했다. 그러나 대형 수퍼마켓인 하오여우둬(好友多)에서 만난 리치(李起)씨는 “지금 판매되는 생수는 대부분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 것들이어서 안심하고 마실 수가 없다”면서 “가족들이 최소한의 물만 끓여서 마신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5시쯤 쑹화강 상류인 쓰팡타이(四方臺) 취수구에 도착한 벤젠 오염 띠는 26일쯤이면 하얼빈 구간을 모두 통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그러나 영하 10도 이하의 추운 날씨로 강 표면이 얼면서 강물의 흐름이 더딘 데다 오염물질이 지속적으로 가라앉아 수돗물 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시민들의 불안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얼빈=조중식 특파원 [ jsch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