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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산행에서 이탈해 이끼계곡으로 숨어들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6. 14:15

 

                      용문산,

 

  산행에서 이탈해 이끼계곡으로 숨어들다

▲ 백운봉(940m)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 남한강 물줄기가 보인다.
ⓒ2005 권용숙

백운봉

양평읍 너른 들판에서 백운봉(940m)은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운 자태로 솟아 있다. 그래서 '한국판 마테호른'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산행 기점은 옥천면의 명찰 사나사.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로 경내에는 삼층석탑과 원증국사비, 부도 등이 있다. 절 뒤편의 함왕골을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좌측능선길을 따르면 함왕산성을 거쳐 용문산이나 백운봉으로 갈 수 있고, 우측 계곡길로 접어 들면 백운봉 정상으로 직접 오르게 된다.

정상에서는 명지산과 화악산, 용문산이 보이고 남한강 물줄기도 보인다. 서쪽으로는 함왕골의 수직암벽과 사나사를 감싼 용문산 서릉이 거대한 용이 누운 듯한 모습이다.
용문산 백운봉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던 산중턱에서 소변이 마렵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겨울 산행인지라 거의 땀을 흘리지 않아서인지 정상에서부터 소변을 참으며, 선두는 아니지만 중간 그룹에 끼어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다.

계속되는 낙엽길에 미끄러질까 조심스럽게 반은 내려갔을 때 도저히 한계에 다다름을 느끼고 아줌마의 용기를 동원해 말을 하고 말았다.
 
 "저기요~ 화장실 좀..." 산중턱에 화장실이 있을 턱이 있나. "알았어요. 뒤볼아 보지 않을 테니 일 보고 오세요." 그렇게 해서 중간 대열에 끼었던 나는 소변을 보겠다고 가장 안전한(?) 곳을 찾아 내려간 곳에서 환상적인 계곡을 만나게 됐다.

ⓒ2005 권용숙
겨울 가뭄 때문인지 계곡물은 마치 시냇물소리를 내며 아래로 흘렀다. 그리 많지 않은 계곡물이 아래로 떨어지며 튄 물방울이 얼어 마치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연상 시킨다.

물방울만한 보석을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수백 개도 넘을 것 같은 물방울이 얼어 붙어 바위 하나를 덮고 다이아몬드처럼 광채를 내고 있었다. 나도 여자인가 보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다이아몬드 닮은 물방울만한 얼음 보석을 못 본 체하고 뒤돌아 뛰어갈 수 있을까?

ⓒ2005 권용숙
나를 더 붙잡아 둔 것은 초록을 찾아보기 힘든 겨울산에서 소나무 말고 또 다른 초록빛으로 계곡의 돌과 나무 밑둥을 덮어 버린 이끼다. 초록바위, 초록나무에 귀신처럼 홀렸나 보다. 인적도 없는 산속, 이끼 덮힌 초록 바위에 길게 달려 있는 고드름 하나를 따 오독오독 씹어 먹었다.

이 고드름은 눈 녹은 물이 지붕에서 내려와 처마에 매달렸던 그 고드름과 또 다른 맛이다. 말 그대로 깊은 산속에서 내려오던 일급수로 만든 고드름이라 그런지 얼마나 맛있던지... 계곡에서 고드름을 보거든 그냥 하나 꼭 따먹어 보시라. 가슴이 시원해진다. 무섭지도 않다. 호랑이가 나타나 고드름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해도 안 줄 것 같다.

ⓒ2005 권용숙
고드름물에 정신이 들었다.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계곡을 뒤로 한 채 언덕 위로 올라와 혼자 내려가고 있다. 어느 게 산길인지 낙엽만 쌓였을 뿐, 이제부터 감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은 사람들 뒤만 따라가면 길이 있지만 빈 산에 나혼자 떨어진 듯하여 슬며시 겁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눈은 산길 언덕밑 계곡에 가 있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쓰러진 나무 틈 사이로 작은 초록 돌이 눈에 들어온다. 또 이끼가 단풍이 든 듯한 커다란 바위도 보인다. 늙은 소나무가 초록 이끼를 덮고 쓰러져있기도 하다. 그때마다 언덕을 내려 계곡에 갔다 올라오기를 수없이 반복하는데 이끼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2005 권용숙
ⓒ2005 권용숙
ⓒ2005 권용숙
ⓒ2005 권용숙
이끼 계곡에 빠져 보낸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난 걷기도 힘든 산길을 뛰어내려갔다. 이제야 내가 오늘 산에 온 목적을 깨달음이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마다 일과처럼 진행하고 있는 부서 정기 산행은 여행이 아니라 거의 지옥 훈련 수준이다. 이름하여 극기 훈련이라 생각하고 외로워도 힘들어도 무조건 앞만 보고 걷는다.

중간에 낙오되는 자에게 꼭 돌아오는 한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산도 못 오르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그 말 한마디에 오기가 생겨 매번 정상까지 오른다. 사진 찍는 것은 정상에서 단체 사진이나 찍어 주는 정도다. 그런 산행에서 난 처음으로 작은 반항을 해 버린 것이다.


 
▲ 백운봉 오르기전 일명 삼거리에서 정상까지 바위입니다. 줄을 매어놓아 줄잡고 오릅니다.
ⓒ2005 권용숙
이끼 탐사 하러 온 게 아닌데 일행을 이탈한 죄를 어이할꼬... 달리기도 제대로 못해 운동회 때 매번 넘어지던 나는 산길을 뛰어서 내려갔고, 후미에 엄마 등산화를 신고 와 발에 물집이 생겼다는 여직원과 보디가드인 남직원를 따라잡았다.

아래 계곡엔 갈대가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고 이끼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물소리만 요란했다. 우리가 출발했던 절 '사나사'가 보인다. 사나사 대웅전을 마당에서 잠깐 보고 돌아서는 내 눈에 저 멀리 돌탑이 들어왔다. 오메~ 돌탑(원증국사탑)과 그 옆에 돌비(원증국사 석종비)에까지 이끼가 살아가고 있다니...

마지막 이끼 사진을 찍고 다시 뛰어 일행이 있는 곳에 그림 같이 착지하려는 찰나. 웬 스님 속옷들을 빨래줄에 하나 가득 널어 놨는지, 나도 모르게 빨래 사진을 찍다 대장한테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스님들 속옷 빨래 처음 보거든요. 죄송합니다."

꼴찌인 줄 알았던 엄마신발을 신고 왔던 여직원이 날 보고 웃는다. 돌아오는 길 하늘에서 하얀 가루가 흩뿌리며 날리고 있었다. 내가 본 첫 눈이다.


 
▲ 사나사 원증국사탑과 뒷편 원증국사 석종비. 모두 이끼가 돋아 있고 마르기도 했다.
ⓒ2005 권용숙
[오마이뉴스 2005-12-04 18:35]    
[오마이뉴스 권용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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