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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음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氣通찬’산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7. 16:58

 

   영기로 본 산하기행(17)] 월출산(1)


 음양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氣通찬’산


  달의 기운이 충만한 작은 금강산...

 

  거대한 수석덩어리로 곳곳에 `부처바위`

▲ 여근 남근 합체석.

월출산(月出山)은 달나라다. 산 기슭의 마을 이름들도 월산리, 월흥리, 월평리, 월강리, 월봉리, 월곡리, 월남리, 월하리, 월송리 등 온통 달 투성이다.

 

그렇게 월출산은 달을 끌어들이고 있다.

 

달빛 휘황한 월출산은 남원(南原)의 지리산(智異山), 장흥(長興)의 천관산(天冠山), 부안(扶安)의 능가산(楞伽山), 정읍(井邑)의 내장산(內藏山)과 더불어 호남(湖南)의 5대 명산이다.

 

‘호남의 소금강(小金剛)’으로 통하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명산이다. ‘작은 금강산’으로 여기면 틀림없다.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솟아 있다. 백제와 신라 때는 월나산(月奈山), 고려 적에 월생산(月生山)으로 불리다 조선 시절부터 월출산으로 굳어졌다.

 

물론 어느 시기에나 달(月)이 성(姓)처럼 붙어 있는 ‘달 뜨는 산’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자리 잡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국보 144호)이 있는 산이 월출산이다. 높은 곳에 있을 뿐더러 불상의 자체 높이만 8.6m에 달하는 거인이다.

 

각진 얼굴, 반쯤 뜬 듯 감은 듯한 눈, 부푼 볼,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서해를 향하고 있다. 이마에는 백호(白毫), 장대한 몸집에는 나발(螺髮)이 있다. 귀는 치렁치렁 어깨까지 닿는다.

 

목은 짧고 어깨는 건장하다. 허리는 잘록하다. 통견의(通肩衣)를 통해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바닥은 하늘을 보면서 무릎에 얹혀있다.

 

몸보다 얼굴이 유독 크다. 얼굴에는 머리가 있고, 머리 속에는 뇌가 있다. 인체를 가리키는 오장육부(五臟六腑)라는 용어에서 두뇌가 빠져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몸짱’ 권하는 사회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마애여래좌상이 일찌감치 깨우쳐주고 있는 것이다. 영(靈)과 육(肉) 중 우선이 바로 영이라는 메시지다.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天皇峯)은 해발 809m다. 낮은 편이나 주변에 큰 산이 없다. 들판에서 갑자기 용솟음친 산이라 체감 위용은 상상 이상이다. ‘산도 아닌 것이, 들도 아닌 것이’를 한참 달리다보면 난데없이 앞을 가로막는 게 월출산이다.

 

의표를 찌르는 입지 탓에 현실의 산 같지 않다. 영화 촬영용 세트가 떠오른다. 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길 양쪽 바위들의 조형성이 인위적이랄 정도로 탁월해 더더욱 그렇다.

 

거대한 돌덩이 전체가 곧 봉우리를 이루는가 싶다가 옆으로 눈길을 돌리면 돌탑이 따로 없다. 절리층(節理層)이 쌓은 자연의 탑꼴이다. 다시 그 옆으로 시선을 옮긴다. 이번에는 새가 날갯짓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려 한다. 저 높은 곳을 향해 부리를 쳐들고 있다.

 

이렇듯 월출산은 자체가 거대한 수석(壽石) 덩어리다. 산수경석(山水景石), 물형석(物形石), 무늬석, 색채석(色彩石), 추상석(抽象石), 전래석(傳來石) 등이 구석구석에서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조각한 돌공원과도 같다. 게다가 부처의 얼굴을 닮은 바위가 유난히도 많다. 월출산의 별명 중 하나인 천불산(千佛山)의 설명이 가능하다. 여기에 기기묘묘한 소나무까지 보태진다.

 

확대한 분재(盆栽)나 다름없는 소나무들이다. 월출산을 조물한 주인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 저 멀리서 신기루처럼 윤곽을 비칠 뿐 가까이 오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재주는 없다.

 

대신 메아리가 돌아올 정도로 소리쳐 묻는다. 당신의 정원 겸 놀이터로 월출산을 조경한 게 아니냐고. 신기루는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웃음 지을 따름이다.

 

‘부처의 가든 힐’과도 같은 월출산인 만큼 이 산에 절(寺)을 지은 승려들의 면면은 예외없이 톱스타다. 도갑사(道岬寺)는 신라 말기에 영암 태생인 도선(道詵)이 창건했다.

 

 음양지리설(陰陽地理說)과 풍수상지법(風水相地法) 등 풍수도참설(風水圖讖說)의 시조인 도선의 영향력은 현 시점에도 유효하다.

 

무위사(無爲寺) 역시 신라 고승 원효(元曉)의 작품이다. 무위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존재는 본존불(本尊佛) 탱화(幀畵)들이다.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노거사(老居士)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다음 그린 그림들이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주지가 법당 안을 엿봤고, 파랑새는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입에 붓을 문 채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려던 새였다. 탱화 속 관음보살의 눈에 눈동자가 없는 이유다.

 

월출산만큼 음양(陰陽)의 조화가 완벽한 산도 드물다. 남성처럼 굳고 꼿꼿하게 돌출한 사자봉(獅子峯) 등 암봉에 압도당하다가도 억새밭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금세 포근해진다. 구정봉(九井峯) 주변 봉우리들은 오밀조밀한 여성미를 물씬 풍긴다.

 

월출산은 역(易)의 괘(卦) 가운데 하나인 지천태(地天泰)를 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아래서 올려보면 남성이요, 위에서 내려보면 여성이다. 양기는 위로 친해지려 하고 여자의 음기는 아래로 친하려 든다. 음양의 기운이 화창해 만물이 소생한다. 남녀가 만나 뜨거운 물을 분출한다.

 

월출산 온천의 효험이 탁월할 수밖에 없다. 피로 회복, 신경통, 류머티즘, 알레르기성 피부염, 만성 습진, 심장병, 피부병 등 월출산 온천의 효능은 곧 남녀간 교류로 치유 가능한 질환 일색이다.

 

한마디로 ‘기똥(氣通)찬’ 산이다.

기독교의 도래 이전, 이 땅의 신앙이란 곧 불교와 도교 그리고 무(巫)다. 월출산이 속한 지명에서부터 영기(靈氣)가 발산된다. 영암(靈岩), 신령스러운 바위 덩어리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영암이라는 땅이름이 월출산의 바위에서 유래했음은 자명하다. 월출산 꼭대기에 오르려면 통천문(通天門)을 통과해야 한다. 등산이 아니라 비상(飛上)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바위 굴을 벗어나면 거기에 달나라, 하늘이 있다.

 

정상에는 월출산 소사지(小祀址)라는 제단이 있다. 통일신라 시대 이래 국가 차원의 천제(天祭)가 올려지던 곳이라는 표지다. 영험하지 않는 곳에 제천의식(祭天儀式)이란 있을 수 없다.

 

바람재를 지나 발길을 재촉하면 구정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조금만 더 걸으면 베틀굴이 등산객을 놀라게 한다. 아가리를 쩍 벌린 거대한 야수와도 같은 형상이다.

 

임진왜란 때 이 굴로 피란한 여인들이 베를 짠 곳이다. 굴 속으로 들어가면 여성의 음부 형상 바위가 적나라한 나신을 드러낸다. 음굴(陰窟), 음혈(陰穴)이 베틀굴과 동의어인 까닭이다.

 

베틀굴 바로 위 구정봉은 생명력 강한 여인 아홉이다. 다산(多産)과 풍요를 약속하는 웅덩이 9곳에 물이 괴어 있다. 전설은 ‘월출산 구림 마을의 동차진이라는 남자가 구정봉에서 하늘을 깔보는 언행을 하다 옥황상제에게 벼락을 아홉 번 맞고 죽었다’고 돼있다.

 

그러나 동차진의 영가(靈駕)가 고백한 진실은 ‘성인용’이다. 어리고 젊은 처첩을 아홉이나 거느리고 이곳에서 방탕한 짓을 벌이다 날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주위 풍광은 곧 도원경(桃源境)이요,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다. 돈 많은 한량이라면 능히 침소를 벗어나 자연의 기운을 흡입하고 싶어했음 직하다.

 

월출산의 영기(靈氣)는 만월(滿月) 즈음에 절정으로 치닫는다. 동시에 월출산 자락의 예민한 이들은 온몸의 물(水)이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무심한 보통사람은 불안해지지만, 민감한 남녀는 월출산을 비추는 보름달 빛에서 영적(靈的) 에너지를 섭취한다.

 

다음 번 음력 15일은 언제인지, 달력을 체크해 볼 일이다.

 

글·사진=차길진 영기연구가(www.hooam.com)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