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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사하라에 가면 오른손바닥을 펴세요!"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1. 14:51

 

 

     사하라에 가면 오른손바닥을 펴세요!"

 

 

 

안식년을 맞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장시기 동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를 매주 월요일에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번 연재에서 오랜 인종갈등 문제를 해소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 오른손을 높이 들어 평화의 인사를 전하는 아프리카인들의 모습.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아프리카인들을 만나면,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를 하라. 그러면 분명히 그 인사를 받는 아프리카인들도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를 할 것이다."

오른쪽 손을 번쩍 드는 것은 내가 당신과 싸울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손바닥을 활짝 펴는 것은 상대방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를 하는 것은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평화의 상징으로 인사한 두 사람은 가까이 다가가서 악수를 하고 서로 친구가 되고 형제와 자매가 되고 연인이 된다.

이렇게 평화로 맺어진 친구와 형제들이 민족이 되고 국가가 된다. 이러한 민족과 국가는 결코 근대적 의미의 피의 동질성으로 맺어진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고 서로의 다른 삶의 방식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의 차이를 사랑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민족과 국가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적 의미의 민족과 국가가 아닌 탈근대적 민족과 국가의 개념이다.

오른손을 번쩍 들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하라

네덜란드를 비롯해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백인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남아프리카를 비롯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근대적 의미의 민족과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근대의 백인들은 자신들이 근대적인 민족과 국가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아프리카를 근대적인 민족과 국가로 구분하고 지배하거나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프리카인들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영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만행이었다. 1960년대 이전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마치 1945년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되어 미국과 구 소련에 의하여 38선이라는 일직선으로 한반도가 분단된 것처럼 동서남북으로 향한 수많은 직선들로 분할되어 있는 아프리카를 볼 수 있다.

나는 아직도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인으로 살면서 근대 제국주의의 흔적들이 살아있는 아프리카 지도를 볼 때마다 한반도의 이산가족들처럼 그 직선들에 의하여 찢어진 수많은 아프리카인 형제, 지매, 친구, 그리고 연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아픔을 읽는다.

이러한 고통스런 근대 제국주의 식민지화 과정 속에서도 서로 다른 지역과 상호 다른 언어의 삶을 지니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을 하나로 엮어준 것이 바로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를 하는 그들 특유의 전통적인 인사법이다.

레소토 공화국의 창시자 몰로미, 그는 왕이 아니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민족과 국가가 대부분 서구 백인들에 의하여 이식된 근대적 민족과 국가인 반면에 남아프리카에는 아직도 남아프리카인들 스스로가 만든 탈근대의 민족과 국가가 존재한다. 그 민족과 국가는 남아프리카의 한 가운데에 마치 섬처럼 존재하는 '레소토(Lethoto) 공화국'이다.

레소토 공화국은 지난 아프리카너 백인 통치의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저항했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은신처이기도 하며 지속적인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힘을 부여한 곳이기도 하다.

'레소토'라는 국가의 이름은 레고야 민족과 바소토 민족이 결합해 만든 국가의 이름이다. 레고야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부쉬맨의 형제들'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며, 바소토 민족은 막스 두 프레즈가 '아프리카의 소크라테스'라고 부르는 전설적인 몰로미(Mohlomi)에 의하여 창시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레소토 공화국의 창시자이자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인들이 존경하고 흠모하는 몰로미를 강력한 왕이거나 절대적인 종교의 사제로 생각한다면 당신도 이미 서구적 근대의 민족과 국가의 개념에 의하여 식민화된 시선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몰로미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왕이나 세속적인 권력을 가진 종교의 사제가 아니다. 그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오른쪽 손을 번쩍 들고 손바닥을 활짝 펴서 인사를 하는 전통적인 인사법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마치 석가모니처럼 왕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뛰어나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전역을 떠돌아다닌 방랑자·예언가·시인이었으며, 마치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처럼 가는 곳마다 신분에 대한 전혀 구별이 없이 환자를 치료한 의사였다.

"지배는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능한 것"

그는 1720년경 바코에나(Bakoena)라는 작은 종족의 추장인 모나헹(Monaheng)의 손자로 태어나 1815년에 죽었다. 그는 원래 '창시자'나 '건설자'라는 의미를 지닌 '몰로미'라는 이름을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또 말썽장이 소년 레포코(Lepoqo)에게 '바소토 민족의 창시자이자 왕'이라는 의미를 지닌 '모레나 모쇼에쇼에(Morena Moshoeshoe)'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 사람이다.

몰로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설적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공통적인 이야기는 그가 13살 혹은 14살의 성인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는 힘이나 권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능한 것이고, 함께 사는 종족을 평등한 인간이거나 형제들, 혹은 자매들로 간주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막스 두 프레즈는 "만일 오늘날에 몰로미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독창적인 사상가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창시자로 간주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종족이 강력히 따르는 부유한 추장이 되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맡기고 사하라 사막 이남의 전역을 여행하였다. 그의 주요한 임무는 병을 치료하는 의사였고, 때때로 예언가이면서 상담가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미 그 시대에 유럽의 백인들이 아프리카에 진출하였지만 그가 백인들과 접촉한 일은 없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은 그가 수많은 어린이들의 아버지 역할을 자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장 사랑하는 부인과 성적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는 자주 "어린이나 젊은이들이 더 훌륭하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린이나 젊은이들의 정신은 아직 사회에 오염되지 않았고, 여전히 자연적인 진리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탈근대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사상 중에서 '소수자되기(Becoming Minority)'의 핵심을 이루는 여성되기. 동물되기, 어린이되기를 이렇게 잘 설명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하라, 사랑받을 것이다"... 관계성에 대한 탈근대적 고찰

그가 죽은 이후에 사람들이 전하는 그의 고민은 주로 '우주는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에서 끝나는가? 생명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생성되는가?'였다고 한다. 그가 이야기한 어록들은 오늘날의 바소토 공화국 사람들 뿐만 아니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의 삶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고 있다.

"양심은 인간의 가장 충실한 안내자이다. 양심은 인간에게 인간의 임무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만일 인간이 양심을 잘 따르면, 양심은 그에게 미소를 보낸다. 인간이 양심을 따르지 않으면, 양심은 그를 고문한다. 이러한 내부의 안내자는 우리가 어머니의 자궁을 떠날 때부터 우리를 인도하기 시작하며, 우리를 무덤의 입구까지 데리고 간다."

양심에 대한 몰로미의 언술은 우리의 근대적 교육과 지식을 지배했던 그 어느 서구 근대 철학자의 철학적 논리보다도 더욱 강렬하고 설득력이 있다.

몰로미는 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랑하라. 그러면 사랑받을 것이다. 미워하라. 그러면 미움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네가 타인들, 특히 불행하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친절하다면 운명이 너의 친구가 될 것이다. 네가 이기적이거나 사악하다면, 불행은 분명히 가까운 미래에 너의 삶의 길을 가로질러 나타날 것이다."

데카르트나 헤겔의 근대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고정되어 있는 영원하거나 절대적인 주체의 개인이나 사회, 혹은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이나 사회는 관계에 의하여 형성되고 변화된다. 인간은 관계적 동물이다. 이러한 관계성을 몰로미보다 더 잘 설명하는 탈근대의 철학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넬슨 만델라로 이어진 몰로미와 모쇼에쇼에의 꿈

몰로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말썽장이 소년 레포코가 바소토 민족의 실제적인 창시자이며 건설자인 '모레나 모쇼에쇼에'가 될 것을 예언하고 그에게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지녀야만 하는 덕목들을 전수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종족과 다른 종족의 포악한 후계자 레포코에게 '모레나 모쇼에쇼에'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종족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 특히 가난한 자와 부족한 자들의 친구가 되고 보호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 장시기 교수
"종족의 지역들을 통과하는 모든 여행자들이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하고, 죽음과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도망쳐온 모든 사람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야만 한다. (중략) 네가 통치하는 땅은 여행자들과 탈주자들의 고향이어야만 한다." 이렇게 말한 몰로미는 자신의 귀걸이들 중의 하나를 떼어내서 그것을 레포코의 귀에 걸어주었다.

그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15년 후인 1820년 경에 레포코는 몰로미의 사상과 삶을 따르는 "바쏘토"라는 민족을 창설하였다. 그는 '19세기의 넬슨 만델라'라고 불려진다. 아마도 넬슨 만델라는 몰로미와 모쇼에쇼에의 역사 속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흑백 통합의 새로운 남아프리카 민족과 국가를 탄생시켰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장시기 교수는 1960년에 태어났으며 1985년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1990년부터 같은 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영미문학연구회 사무국장, 문학과 환경학회 재무이사, 민교협 사무처장 등을 지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문학과 언어>, <근대와 탈근대의 접경지역들>, <노자와 들뢰즈의 노마돌로지> 등의 책을 펴냈으며 안식년을 맞아 지난 7월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머물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5-12-19 10:21]    

***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