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아프리카

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아프리카의 상처가 빚은 진주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21. 22:20

 

         아프리카의 상처가 빚은 진주

 

                    케이프타운

아프리카 여행은 매력적이다. 떠나기 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그로 인한 설렘도 좋고, 돌아오는 길에 한층 성숙해진 자신을 만나는 것도 유익하다.
 
아프리카 여행은 여행자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대자연과 도시, 원시와 현대,산과 바다, 다양한 사람과 동물, 적당한 모험과 무용담, 관광과 휴식, 지식과 교훈, 일상과 다른 하루.
 
치열한 아프리카의 삶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고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존재를 겸허하게 만드는 대자연 앞에서 살아온, 또 살아갈 날들을 새기게 된다.
 

케이프타운(남아공) 글·사진=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금 여름이 한창이다. 입법 수도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의 유럽'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모습이다. 그림 엽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아니, 케이프타운을 보고 그림 엽서를 그렸다는 게 맞을 듯싶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 옆으로 병풍 같은 산, 산자락 끝에는 희망곶이 바다로 내뻗어 있다. 해변을 따라 부호들의 별장이, 깨끗한 시내에는 높고 낮은 건물이 조화를 이룬다.

 

19세기 네덜란드식 부둣가의 노천 카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앞에선 노신사 넷이 흥겨운 연주를 들려준다.

 

케이프타운은 350년 전 유럽과 인도를 오가는 범선들이 식량을 보충하고 쉬어 가는 보급 기지로 개발됐다. 165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얀 반 리벡이 배 다섯 척을 이끌고 상륙하면서 백인 지배 식민지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보다 먼저 케이프타운은 희망의 도시로 이름을 새겼다. 1497년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이곳을 지나는 항로를 개척하자 그 나라 왕이 '희망곶'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동쪽(인도)으로 가는 항로를 찾는 희망을 북돋워 줬다는 뜻에서다. 인도에서 향신료와 차를 가득 실어 오던 유럽 선원들이 풍랑이 심한 희망곶 부근을 지난 뒤엔 고향이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보통 알고 있는 것과 달리 희망곶은 아프리카 최남단이 아니다.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150㎞ 떨어진 아굴라스 곶이 진정한 남쪽 땅끝이다. 희망곶에 있는 팻말에 '아프리카 대륙의 서남단'이라고 적힌 이유가 이제야 끄덕여진다.

 

희망곶이 최남단이라는 타이틀을 가로채게 된 이유는 분분하다. 아굴라스 곶이 케이프타운 시내에서 자동차로 2시간 떨어져 있는 데다 주변에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서 관광 편의상 희망곶을 최남단으로 치고 구경하고 간다는 이야기가 가장 그럴듯하다.

 

케이프타운 곳곳에는 50년 넘게 지속돼 온 인종 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18년간 갇혔던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로벤섬이 그중 하나다. 만델라의 수감 번호가 적힌 감방과, 그의 체취가 묻은 담요와 식기가 보존돼 있다. 자유와 인권의 의미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흑과 백만 존재할 것 같은 남아공에 강렬한 색이 살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컬러드(colored)'라고 불리는 유색 인종이 집단 거주했던 곳이다.

 

컬러드는 인도.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끌어온 노예나 강제 이주민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다. 케이프타운의 다수 인종은 흑인이 아닌 컬러드(48%)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인종을 백인.흑인.컬러드.인도인의 네 등급으로 나눠 거주 지역을 정해줬다.

 

컬러드는 모여 살면서 색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강렬히 드러내 집 외벽을 형형색색의 파스텔 빛깔로 칠했다. 노랑.오렌지.터키.민트색으로 칠한 집이 남아 있는 말레이 쿼터는 그 이국적인 풍경이 마치 동화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케이프타운은 여러 가지가 공존하는 도시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지낸다. 백인들만 해도 초기 이민자인 네덜란드계의 보어인부터 독일인.영국인들의 후손들이 있고 흑인들은 다수족인 줄루.코사.음베델레 등 여러 부족이 어우러진다.

 

공용어도 11개가 공존한다. 어느 관청에나 11개 언어로 된 공문서가 비치돼 있다. 영어와 아프리칸스어, 여기에 9개의 원주민 언어를 더해서다.

 

컬러드가 쓰는 아프리칸스어는 네덜란드어에 원주민의 말이 섞여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의 네덜란드어와는 소통이 안 될 정도로 변형된 형태다.

 

이곳에서는 사람과 동물도 공존한다. 고급 주택이 늘어선 불더스 비치에는 아프리카 펭귄 수천 마리가 노닐고 있다. 희망곶 산책로에는 개코 원숭이가 통행세 징수원처럼 길을 막고 버티고 있다.

 

뭍에서 배를 타고 10분쯤 나가면 돌 섬 한 가득 물개 수천 마리가 살고 있다. 물개라면 으레 박수치고 대답하고 사육사가 던져주는 '포상' 물고기를 받아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구는 모습이 도시인의 눈에는 영 어색하다.

 

자기 먹이를 자기가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자유의 상징이리라. 사람과 동물이 영역을 구분 짓지 않고 공생하는 곳, 그곳이 아프리카다.

 

동쪽의 인도양과 서쪽의 대서양이 만나는 아프리카판 두물머리 케이프타운. 두 대양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드문 도시다. 이곳에 서면 대양의 교차점에서 광활한 자연 속 한 점에 불과한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산 정상이 탁자처럼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에 오르니 탁자에는 '하늘 정원'이 펼쳐져 있다. 정원은 한쪽 길이가 3㎞를 넘는다고 하니 둘러보는 데 3시간은 족히 걸린다.

 

구름이 저만치 발 아래에 걸려 있고, 색색의 꽃과 풀이 가득한 지상 1085m 위의 정원, 천국이 이런 모습일까 싶다.

 

 

*** 여행정보

 

■준비=서울~홍콩(4시간), 홍콩~요하네스버그(13시간),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2시간) 등 비행 시간만 19시간에 달한다. 남반구에 위치해 계절은 한국과 반대다. 여름에도 낮에는 태양이 이글거리지만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져 무척 쌀쌀하다.

 

자외선 차단제와 긴 소매 옷을 동시에 챙겨야 한다. 정전에 대비해 손전등을 챙겨도 유용하다. 짐은 되도록 간단하게 꾸려 기내에 들고 탈 것을 추천한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하는데 그중 한 편이라도 짐이 실리지 못하는 수가 있고, 짐이 분실되거나 도난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서울에서 부친 짐을 닷새 뒤에나 받았는데, 가방이 엉망이 돼 있었다.

 

■추천 코스=

 

아프리카 여행은 단체 투어가 제격이다. 대중 교통이 발달돼 있지 않고 도로 여건도 좋지 않다. 국내 시판 중인 아프리카 여행 상품은 대부분 남아공과 케냐.탄자니아.짐바브웨 등 주변국을 묶은 것이다.

 

주변국에서 원시 모습의 사파리를 체험한 뒤 남아공의 도시 투어를 하는 일정을 권한다. 남아공을 제외한 나라들은 황열병 접종과 말라리아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린 자녀를 동반하는 경우에는 남아공에서 사파리를 하는 것도 좋을 듯.

 

■문의=남아프리카 항공 02-775-4697, 아프릭 코리아 02-733-0909.

[중앙일보 2006-03-17 06:02]    

 

 

 

 

JennyFlute(젤이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