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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쌍께사,욕심 버리고 더불어 살면 내가 바로 나한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5. 21:16

 

 

                   논산 쌍계사,

 

  욕심 버리고 더불어 살면 내가 바로 나한

 
▲ 조선 전기 엄격성과 조선 후기 장식성이 돋보이는 성혈사 나한전
ⓒ2005 신병철
경북 영주군 순흥면 소수서원 반대 쪽으로 5~6km 들어가면 성혈사가 나온다. 산 속으로 한참 들어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생각이 들 즈음 절 형태가 나타난다. 성혈사는 아마도 처음에는 굴 절이었을 것이다. 굴은 사라져 법당도 없어지고 주변부였던 나한전과 산신각만 남아 있다. 최근 나한전 아래에 법당과 요사채를 크게 지었으나 옛 모습은 아니다.

▲ 성혈사 나한전 내부. 중앙에 비로자나불이 계시고 좌우에 16 나한이 자리잡고 있다.
ⓒ2005 신병철
나한전은 나한들이 계시는 집이다. 아라한의 준말인 나한은 응진이라고도 하는데 진리를 해치는 존재를 막아주고 번뇌를 끊어주는 존재라고 한다. 가장 신속하게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한에는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포함되는데 적게는 16나한, 18나한이고 많게는 5백 나한인 곳도 있다. '부처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를 깨달은 존재'로 보면 된다.

성혈사 나한전에는 16나한이 있다. 중앙에 있는 법신불 비로자나불 좌우에 각 8나한씩 앉아 있다. 옛부터 나한의 모습에는 특별한 형식이 없어 자유롭게 표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성혈사 나한전의 나한들도 대단히 개성적이다. 생김생김이 제각각이다.

▲ 나한전 투각 문살 조각, 아래 왼쪽은 중앙의 십장생문, 오른쪽은 모란꽃 조각
ⓒ2005 신병철
성혈사 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3칸 짜리 조그마한 절집이다. 정면을 보는 순간 문에 문살로 새긴 투각 조각이 눈에 번쩍 띈다. 중앙 칸의 문살이 가장 눈길을 끄는데 온갖 종류의 상서로운 짐승과 꽃으로 가득 차 있다. 학, 물고기, 개구리, 게, 용, 동자상, 연꽃을 투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해야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른쪽 문살에는 화려한 꽃이 만개했다. 모란꽃으로 보인다. 왼쪽의 문살 역시 오밀조밀한 무늬와 꽃으로 아름답게 꾸몄다. 문살의 투각 무늬들이 절집 안에 있는 존재들이 예사로운 존재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신통력을 가졌으면서 친근하며 따뜻하고 인정스런 맘으로 누구에게나 흔쾌히 소원을 성취시켜 줄 것이라는 분위기를 문의 무늬가 만들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집 꽃 문살, 왼쪽은 내소사 문살, 오른쪽은 논산 쌍계사 문살
ⓒ2005 신병철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문살 무늬로 잘 알려진 절집은 변산 내소사 대웅전이다. 채색하지 않은 나무로 조각한 꽃 문살이 가관이다. 17세기 후반부터 상인들이 돈을 대어 절집을 많이 지었다. 이런 절집들은 대부분 엄격한 규격성보다는 장식성을 강조하였다. 절집을 화려하게 꾸몄다. 이런 경향 속에서 문살무늬가 화려해져갔다. 논산의 쌍계사와 부안의 개암사를 비롯한 18~19세기 절집의 문살은 대부분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몄다. 나한전의 문살무늬도 이런 시기에 만들었을 것이다.

▲ 나한전 내부. 내2출목 다포식 건물로 굵직한 대들보와 우물천정이 돋보인다. 조선 전기의 규격적 경향이 보인다.
ⓒ2005 신병철
성혈사 나한전은 단순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지붕은 책을 조금 벌려 세운 모양으로 가장 단순한 구조인 맞배지붕이다. 지붕을 기둥에 얹히는 공포는 다포식이다. 기둥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 공포가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다포식은 기둥 부근에 서까래를 받쳐 기둥으로 전달하는 도리를 기둥 안팍으로 많이 걸칠 수 있다.

지붕을 크고 화려하게 높이 올릴 수 있는 구조물이다. 실제로 안팍으로 2개씩의 도리를 걸치고 있어 처마 끝이 기둥 바깥으로 멀리 나갈 수 있게 했다. 집의 크기에 비하여 큰 지붕을 올릴 수 있는 이유도 다포식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 쇠서 모양, 윗 사진은 조선 전기 개심사 대웅전 쇠서로 아래로 향하고 있다. 아랫 사진은 조선 후기 미황사 대웅전 쇠서로 위로 향하고 있다.
ⓒ2005 신병철
그런데 바깥으로 뻗은 쇠서라고 부르는 소 혀 모양 공포의 끝이 그냥 앞으로 뻗어 있다. 15,16세기 양식이다. 14,15세기 쇠서들은 아래로 향하여 묵직하게 보이고 17,18세기의 쇠서들은 위로 날렵하게 처들고 있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성혈사 나한전의 쇠서는 조선 중기의 모습으로 보인다.

▲ 조선 중기 쇠서 모양. 윗 사진은 성혈사 나한전, 아랫 사진은 금산사 미륵전 쇠서 모양이다. 조선 중기 쇠서는 이렇게 앞으로 내뻗고 있다.
ⓒ2005 신병철
실제로 성혈사 나한전 보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에 따르면 1553년에 처음 지었고 1634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결국 이 나한전은 조선 전기를 이은 중기의 차분하고 규격적인 구조에 18세기의 화려한 장식성이 보태져서 현재에 이르렀다. 내부에 들어가면 보이는 공포와 대들보 및 도리 등의 뼈대에 해당하는 부재들은 상당한 엄격성을 지니고 있어 조선 중기의 건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건물 안 중앙에 흰 비로자나불이 앉아 있고 좌우에 나한들이 앉아 있다. 비로자나불은 법신불로서 모든 부처의 원조에 해당한다. 대부분 나한전에는 석가모니 부처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데 여기는 법신불이 대신하고 있다. 법신불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한 존재가 석가여래이니만큼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

▲ 성혈사 나한전 4나한. 대단히 개성적이다. 머리나 손 모양에 있어 같은 것이 전혀 없다.
ⓒ2005 신병철
나한들의 모습은 매우 개성적이다. 일정한 규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성이 철철 넘친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나한도 있고 장발도 있고 대머리도 있다. 앉은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미소 띤 나한, 시무룩한 나한, 친절할 것 같은 나한, 무뚝뚝한 나한 등 온갖 형상이 다 모였다. 18세기 서민들은 이런 나한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사실 부처는 너무 높고 멀리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고차원적인 소원을 빌 때는 부처님께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살다보면 차원 낮으면서도 이기적이고 대단히 구체적인 그러나 자신에게는 매우 절실한 소원도 있는 법이다. 이런 소원을 창피하게 부처님께 여쭈는 것이 외람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18세기에 서민들의 소원은 그랬다. 엄청난 진리 그 자체인 부처님과 함께 사소한 소원을 들어줄 것 같은 나한전이 18세기경에 많이 생겨난 것은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맨 왼쪽 사진은 미황사 응진전에 계시는 나한들이고 오른쪽 세 분은 논산 쌍계사 나한전에 계시는 나한분들이다. 자식 대학 합격 소원은 어느 분에게 빌어야 할까?
ⓒ2005 신병철
고려시대부터 나한 신앙은 있었다. 조선에 들어와 나한들의 인기가 올라갔다. 조선 전기 나한 중에서 경북 영천의 거조암 영산전의 500나한이 으뜸이다. 너무나 개성적인 500 나한들이 거대한 절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경이롭기까지 하다.

논산 쌍계사 나한전은 앙증맞은 나한으로 유명하다. 조그만 나한들이 개성을 담뿍 띠고 있어 아이들이 가지고 놀아도 될 듯 싶다. 미황사의 응진전의 나한들도 재미있다. 하기사 나한의 특징이 개성적인 모습이니 인정미 넘치지 않은 나한이 어디 있으랴.

나쁜 맘 먹지 않고 욕심을 버려 이웃과 더불어 살면 우리가 바로 나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2005-12-19 14:28]    
[오마이뉴스 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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