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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눈보라 속에서 히말라야를 보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2. 15. 21:24

 

 

                       덕유산,

 

       눈보라 속에서 히말라야를 보다

 

산행을 앞둔 며칠간 호남지역에는 계속 눈이 내렸다. 폭설로 인해 미리 짜놓은 덕유산 종주 일정이 차질을 빚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특히 험준한 남덕유산과 삿갓재까지의 등산로는 고도차이가 크다. 지도에는 4시간 소요되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런 눈길에는 언감생심이다.

러셀(등산에서, 큰 눈이 와서 쌓였을 때 눈을 쳐내어 길을 트면서 나아가는 일:편집자 주)마저 되어 있지 않다면 참으로 낭패다. 이런저런 걱정을 안고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사당역을 출발했다.

▲ 덕유산 마루금
ⓒ2005 이현상
무주를 지나자 왼편으로 덕유의 장쾌한 마루금이 보인다. 곤도라를 운행하는 설천봉과 향적봉은 눈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평지와는 달리 기후가 좋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남덕유-stairway to hell

유례없는 12월의 폭설과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로 이번 산행은 천당 아니면 지옥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이번 산행은 천당과 지옥이 공존했다.

서둘렀지만 오후 1시 50분이 되어서야 영각사 매표소를 통과했다. 삿갓재까지 6시간을 예상한 터라 최소 2시간 이상은 야간산행을 해야 했다. 1000고지 정도에 이르자 눈보라가 미친듯 불어 댄다. 안경알이 눈에 얼어 붙어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눈썹도 허옇게 얼어붙고 눈물도 얼어 붙었는지 눈이 따갑다.

▲ 남덕유 정상으로 이어진 철계단
ⓒ2005 이현상
영각사 매표소를 통과한지 2시간 만에 정상으로 이어진 철계단을 만난다. 급경사의 420개 철계단을 다 올라야 남덕유 정상이다. 말하자면 이 구간이 오늘 산행의 '크럭스'(난코스)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곧 주능선을 만나 급경사길의 체력소모는 덜하겠지만 몰아치는 강풍과 눈보라, 어둠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오후 4시 10분. 마침내 남덕유 정상이다. 예상보다 강한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친다. 아직 일몰 전이었지만 시계는 불과 4~5m도 안된다. 동계용 중등산화에 두 켤레의 양말을 신었지만 발이 시리다. 잠시도 서 있을 수 없어 정상에서는 사진 한 장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멀고도 험한 삿갓재 가는 길

보름이 엊그제였으므로 쨍한 달빛아래 눈길을 걷는 낭만을 기대했지만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등산로가 아닌 곳을 잘못 밟으면 허리까지 눈이 찬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서너 걸음에 한걸음은 뒤로 미끄러진다. 이러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문득 죽음이라는 것이 무척 가깝게 느껴진다. 나중에 삿갓재에 이르러서야 알았지만 영하 20도라고 하니 강풍을 감안한다면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이하였던 것이다.

▲ 삿갓재 가는 길
ⓒ2005 이현상
눈보라를 맞으며 어둠 속 삿갓재에 이르는 길에서 여기가 히말라야 어디쯤일 거라는 착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산에서 죽어간 사람들과 조난사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잠시 걸음을 멈추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추위와 눈보라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계속 걸어야 한다. 멈추면 죽는다.

삿갓재 대피소, 지옥을 빠져나오다

오후 8시. 마침내 저 아래 붉은 수은등이 켜진 삿갓재 대피소가 보인다. 검고 긴 지옥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온 것이다. 지친 사람들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대피소에서 몸을 녹인다. 더러는 추위에 두려움에 안도감에 눈물을 흘린다. 아, 모두 살아 돌아왔구나.

▲ 삿갓재 대피소
ⓒ2005 이현상
6시간 30분간의 사투 끝에 전원이 무사히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친 일행들은 일단 대피소 안에서 쉬고 나머지는 부지런히 저녁을 준비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술잔이 몇 순배 돌자 머리 속이 아련해진다. 저녁 10시 40분.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침낭 속에 들어가자 죽음처럼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 삿갓재에서 찍은 사진. 뒤로 무룡산이 보인다.
ⓒ2005 이현상
북으로 북으로 덕유 마루금을 밟다

오전 9시.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종주길에 나선다. 날씨는 청명하다. 차고 맑은 공기가 바람과 함께 뺨을 때린다.

▲ 눈꽃 사이로 걷다.
ⓒ2005 이현상
10시 30분. 삿갓재를 출발한지 1시간 15분만에 무룡산 정상에 선다. 지도상으로는 2.1km, 1시간 소요이므로 아주 느린 속도는 아니다. 무룡산은 덕유종주의 중간지점에 해당한다. 이제 힘든 구간이라고는 덕유평전에서 중봉으로 올라서는 오르막길 뿐이다. 그러나 나무나 바위가 없이 툭 터진 능선을 올라쳐야 하므로 강풍에 노출될 것이다. 일단 동엽령까지 가서 이후 산행일정을 결정하기로 하고 동엽령을 향해서 계속 전진했다.

▲ 계속 가야 할 덕유 능선
ⓒ2005 이현상
생환하다

오후 1시 5분. 동엽령에 이르렀다. 4.1km의 길을 약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아주 느린 속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피로가 누적되면서 계속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곤도라가 있는 설천봉까지는 약 5km. 예상시간은 3시간. 곤도라 운행여부를 문의하기 위해 운행사무소로 연락을 해 봤다. 4시 30분까지 운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4시까지만 운행한단다.

곤도라를 타고 하산하려면 4시까지 설천봉에 닿아야 한다. 시간이 빠듯하다. 체력소모와 속도의 추이를 봐서는 곤도라 운행시간까지 도착하기 힘들다고 의견을 모은다.

▲ 무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
ⓒ2005 이현상
@IMG9못내 아쉬웠지만 현재와 같은 속도로 향적봉 너머 설천봉까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동엽령에서 가장 평이하고 짧은 칠연계곡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다들 쌩쌩하다. 일부 대원들이 무릎통증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빠른 속도로 하산했다. 칠연폭포를 지나 매표소에 도착하자 오후 3시 15분. 다시 눈발이 굵어지는 덕유산 자락을 막 빠져나온다. 말하자면 이것은 '생환'이다.

산행코스

▲빨간색 선이 산행코스
영각사매표소->(3.6km)->남덕유산->(4.3km)->삿갓재 대피소->(2.1km)->무룡산->(4.1km)->동엽령->(3.3km)->칠연계곡 총 산행거리 17.4km. 산행시간 12시간 30분
/ 이현상


[오마이뉴스 2005-12-21 15:35]    
[오마이뉴스 이현상 기자]
 
 
덧붙이는 글
12월 여행 이벤트 응모. 코오롱등산학교(http://www.mountaineering.co.kr) 정규반41기,암벽반21기 수료자 모임의 덕유산 종주기입니다.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