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는
보타종승지묘 바로 지척에 있습니다. 보타종승지묘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보타종승지묘에서 바라보는 수미복수지묘의 경관이 매우
좋습니다. 멀리 경추봉(38.3m) 봉우리까지도 한눈에 보입니다.
짧은 거리라 하더라도 추위를 뚫고 걸어가기가 녹록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원 밖은 의외로 따뜻합니다. 흐렸던 어제 날씨와 달리 오늘은 햇빛도 반짝입니다.
사원이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나라 학교들이 대체로 고지대에 있어 추운 것처럼. 하늘이 푸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도로를 지나는 차도 별로 없어 걷기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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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복수지묘의 모습이 한눈에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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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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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복수지묘에 도착했습니다. 수미복수지묘는
청나라 건륭제가 승덕을 방문한 판첸 라마 6세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짓도록 지시한 사원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따라쟁이' 습성이 여기에도
발휘되어, 수미복수지묘는 티베트의 타시룬포사(티베트불교 황모파의 대본 산)를 모방했다고 하네요.
아이고!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저는 또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이경규 아저씨의 복수혈전이 마구 떠오르면서, '복수를 하고 생을 마감한 수미의 묘'가 연상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인공이 된 '수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단한 여고수일 겝니다.(전국의 '수미'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의 엉뚱한
상상을 이해해 주세요~)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도 역시 입장권 가격이 가이드북에 고시된 것보다 쌉니다. 겨울은 워낙
비수기라, 개방되지 않는 전시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타종승지묘와 마찬가지로,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비석 세 개가 세워진 작지만 높은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이 비석 건물을 뭐라고 지칭하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편의상 '비석전(碑石殿)'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석전 앞에 향로만 놓여 있던 보타종승지묘와 달리 깃발도 줄지어 서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소책자 내용
빈약, 제대로 된 안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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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복수지묘의 정문과 정문 바로 안의 비석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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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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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석에는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중국의 유적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참 아쉬운 것 중 하나가 해당 유적지를 설명하는 안내 책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당 자치구가 관광용 안내책자,
지도 등을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저라면 무료가 아니라 돈을 지불하더라도 기꺼이 살 용의가 있습니다만, 중국에서는 아직
그러한 홍보나 서비스 개념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아차, 있는 곳도 있습니다. 천단 공원에 소책자가 있기는 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기꺼이 돈을 주고 살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 사긴 했지만 솔직히 조금 화가 났습니다. 돈을 받고 팔았다는데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 문제였지요.
A4용지 한 장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작고 내용 없는 소책자는 무성의할 뿐더러, '이 사람들이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구나'라고 느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북경동물원과 원명원(청나라 융성기때 지어진
347만㎡ 면적의 황제 별장)의 소책자는 유료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고, 무료 소책자는 자금성에서만 보았네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수미복수지묘로 가보겠습니다. 수미복수지묘의 비석전을 지나 본전(本殿)을 향해 올라갑니다. 이곳은 깔끔하게 계단으로 정리되어 있던
보타종승지묘와 달리 자연을 많이 살려 흙길과 바위를 밝고 올라가야 합니다. 나지막한 산을 오르는 기분이지요.
예전에 북경의
옹화궁(雍和宮)에서 보았던 낯익은 형태의 건축물이 보입니다. 옹화궁은 북경 시내에 있는 티베트식 사원입니다.
외팔묘(外八廟, 피서산장 외곽에 있는 여덟
개의 티베트식 사원) 사원들의 형태상 주요 특징은 중국식 사원과 티베트식 사원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건축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참 흥미롭습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 묘하게도 잘 어울려 있습니다.
외팔묘 정신 따라 중국·티베트에 평화
깃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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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문양의 티베트식 출입구와 코끼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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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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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이 떠오릅니다. 티베트의 스님들이 정성 들여 곱게 만들어 놓은 만다라(힌두라와 탄트라 불교에서 종교의례를 거행할 때나 명상할 때
사용하는 상징적인 그림)를 중국 군인이 무참히 짓밟고 가던 장면.
청나라 시기만 해도 중국과 티베트는
사이좋은 관계였는데. 무엇이 이 두 나라(지금은 한 나라이지만)의 사이를 갈라놓았을까요. 티베트 양식과 중국 양식이 조화로운 이 외팔묘의
사원처럼 티베트와 중국 사이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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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찾지 않는 건물은 점점 낡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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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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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현재 수미복수지묘의 많은 건물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아예 문을 걸어놓았고 관리인도 별로 없어 사원 내부는 고즈넉하다 못해 을씨년스럽습니다.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는 건물들은 점점 초췌해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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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복수지묘의 본전 역시 보타종승지묘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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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영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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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복수지묘의 본전 역시 보타종승지묘와
마찬가지로 3층 건물이 가운데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回자 모양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만, 전시실은 개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입장권 가격이 낮은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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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복수지묘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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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윤영옥 |
하지만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습니다.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앞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승덕에 온 보람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걸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얼마나 많이 보았나,
얼마나 많은 곳에 가 보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무엇'은 꼭 다른
어디론가 떠나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저는 제가 길 위를 걷는 행위를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도, 저 자신을 '여행자'라고 칭하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다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길 위에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자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번자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03-04
12: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