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중국여행

티베트와 중국이 이곳처럼 조화롭다면...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4. 22:27

 

   외팔묘는 외팔이의 무덤이 아니에요

 

 

 하루종일 잔뜩 추위에 떨었을 땐 뜨거운 물로 하는 목욕이 최고의 약일 텐데, 이미 말씀드렸듯이 제가 묵고 있는 호텔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답니다. 그나마 전기 주전자가 있었기에 우선 차를 우려낸 뜨거운 컵에 손을 녹이고, 다시 그 주전자로 물을 끓여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지요.

물 끓는 속도도 너무 느려 세수하고 머리 감는 데만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였는지 모릅니다. 찔끔찔끔 끓여대는 소량의 물로 차마 샤워까지 할 수는 없었지요. 따뜻한 샤워처럼 너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이런 기회가 아니면 좀처럼 깨닫기가 힘듭니다. 여행이 주는 작은 선물이지요.

더블 룸을 혼자 쓰는 기념(?)으로 여러 장의 이불을 겹쳐 덮고 잠을 청했습니다. 낯선 곳에서도 아주 잘 먹고 아주 잘 자는 저의 탁월한 현지 적응력 덕분에 다음날 늦잠을 자고 말았네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혼자이니 눈치가 보일 일도, 일정에 쫓길 일도 없습니다. 아침에도 역시 조그만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씻고, 북경에서 출발할 때 넣어온 빵과 사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에서 나왔습니다.

오늘 제가 가려는 곳은 외팔묘(外八廟)입니다. 피서산장의 외곽에 있는 여덟 개의 티베트식 사원을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자꾸 무협 영화에 등장하는 '외팔이'의 '무덤(墓)'이라는 말이 연상되어 혼자 웃음을 지었습니다. 외팔묘는 '외십이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는 열두 개의 사원이 있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이 여덟 개뿐이라고 하니까요. 외십이묘였다면 저도 그렇게 우스운 상상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아 있는 여덟 개의 사원 중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보타종승지묘(普陀宗承之廟)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보타종승지묘라는 본래의 정식적인 이름보다는 '작은 포탈라'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립니다. 도로의 이정표에도 작은 포탈라라고 적혀 있으며, 택시 기사 아저씨도 보타종승지묘로 가자는 제게 "작은 포탈라요?"하고 되묻습니다.

그 이유는 보타종승지묘가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을 똑같이 따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예로부터 '본떠 만들기'에 남다른 감각과 탁월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나 봅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현실에 박수를 쳐야 하나요, 손가락질을 해야 하나요.

택시를 타고 5분쯤 갔을까요? 벌써 보타종승지묘가 보입니다. 우리가 흔히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사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빨갛고 하얀 크고 작은 각진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글로만 봐서는 별로 예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 보는 보타종승지묘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도 모르게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와! 정말 예뻐요"라고 말했을 정도이니까요.

▲ 보타종승지묘 정문을 바람이 먼저 훑고 지나갑니다.
ⓒ2006 윤영옥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으로 들어와서 보는 보타종승지묘는 멀리 겉에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조금만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겉에서 보는 모습과 안에서 보는 모습은 너무 달라서 서로 다른 곳에 와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이 사당 안에는 세 개의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2006 윤영옥
정문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사원 안에는 세 개의 커다란 비석이 있습니다. 정문 안에 바로 비석을 세운 이 형태는 외팔묘의 다른 사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티베트에 안 가봐서 모르겠지만, 티베트 사원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중국의 다른 유적지 건물 앞에는 보통 사자상이나 기린(麒麟)상이 있는데, 이곳에는 코끼리상이 있다는 점도 특이합니다.

 
▲ 사당 앞에 서 있는 귀여운 코끼리상. 귀여워 보여도 되는 건가요?
ⓒ2006 윤영옥
코끼리상을 둘러싼 울타리나 각 사원의 난간 등에는 사람들의 기원을 담고 있는 불(佛) 자가 인쇄된 작은 패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절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요.
 
 흰 글씨로 가족들의 이름과 소망을 적어 놓은 기왓장들 말이에요. 트레비 분수나 인천공항 분수대에 가득한 동전, 불상 앞의 시주함에 가득한 지폐도 모두 같은 의미로 보아도 될 것입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 저는 그러한 것들을 볼 때마다 가슴 한쪽이 아련해져 옵니다. 특히 불국사 뒤뜰의 무수한 돌탑들을 보았을 때에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지요. 저 수많은 소망과 바람들, 과연 다 이루어졌을까.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그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왜 인간(물론 저를 포함해서입니다)은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 등등의 생각들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 주렁주렁 매달린 소원들, 왜 이리도 바랄 것이 많은가요.
ⓒ2006 윤영옥
보타종승지묘는 여러 사원들이 각기 아름답고 조화롭게 어울려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대홍대(大紅臺)입니다. 대홍대는 높이가 18m에 달하는 크고 높은 빌딩입니다. 제가 빌딩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사진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현대식 건물과 다름없이 겉은 그냥 평평하고 밋밋한, 다만 색깔이 특이한 건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대홍대의 표리부동(表裏不同)에 깜짝 놀랍니다. 대홍대의 내부는 回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정 가운데 사원이 하나 있고 그 겉을 3층짜리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 3층 건물 역시 겉에서 보던 현대적(?)인 모습과는 달리 전통적 양식 그대로를 따르고 있습니다.

▲ 보타종승지묘 내부의 여러 건물. 하단 왼쪽이 대홍대입니다.
ⓒ2006 윤영옥
대홍대는 현재 전시실로 쓰이고 있습니다. 1층은 불상들이 놓인 불당이고, 2층은 티베트 불교 관련 법구들, 3층에는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복식이나 파오 등이 전시되고 있지요. ㅁ자 모양이기 때문에 입구와 출구가 헷갈릴 수 있습니다. 저는 들어올 때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나가는 문을 찾기 위해 그 안을 몇 바퀴를 돌았답니다.

중국의 여기저기에 다니다 보면 느끼는 점이지만, 여기에도 관리인들이 참 많습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국 정부의 대책이었다고 하지요? 심지어 대형 마트에 가면 계산대마다 계산하고 돈을 받는 사람과 물건을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사람이 따로 있기도 합니다.

현재 이곳 승덕 유적지의 관리인들은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겨울이라 승덕을 찾는 관광객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관리인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벗어나 서로 모여 있기 일쑤인데, 보타종승지묘에서는 유달리 제기차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띕니다. 제기차기가 단순히 추위를 쫓기 위한 한 방편인 건지, 새롭게 떠오르는 유행 스포츠(?)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대홍대는 이렇게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관리인들은 제기를 차며 추위를 잊습니다.
ⓒ2006 윤영옥
제가 갔을 때는 대홍대 전시실을 둘러보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인 한 명이 약간은 귀찮은 표정으로 제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저를 감시(?)하더군요.
 
기분이 묘했습니다.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괜히 저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는 원망을 받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비수기에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이의 설움입니다.

대홍대를 둘러보고 다시 길을 내려왔습니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것들도 뒤에서 다시 보니 새롭습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여유를 부리며 숨을 고르고 싶었습니다. 춥지만 않았다면요. 보타종승지묘를 나와 다음 예정지인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를 향했습니다.

▲ 보타종승지묘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2006 윤영옥
[오마이뉴스 2006-03-03 13:56]    
[오마이뉴스 윤영옥 기자]

 

 

 

 

티베트와 중국이 이곳처럼 조화롭다면...

 

 

 수미복수지묘(須彌福壽之廟)는 보타종승지묘 바로 지척에 있습니다. 보타종승지묘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보타종승지묘에서 바라보는 수미복수지묘의 경관이 매우 좋습니다. 멀리 경추봉(38.3m) 봉우리까지도 한눈에 보입니다.

짧은 거리라 하더라도 추위를 뚫고 걸어가기가 녹록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원 밖은 의외로 따뜻합니다. 흐렸던 어제 날씨와 달리 오늘은 햇빛도 반짝입니다.
 
사원이 높은 곳에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나라 학교들이 대체로 고지대에 있어 추운 것처럼. 하늘이 푸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도로를 지나는 차도 별로 없어 걷기에도 좋습니다.

▲ 수미복수지묘의 모습이 한눈에 보입니다.
ⓒ2006 윤영옥
수미복수지묘에 도착했습니다. 수미복수지묘는 청나라 건륭제가 승덕을 방문한 판첸 라마 6세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짓도록 지시한 사원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따라쟁이' 습성이 여기에도 발휘되어, 수미복수지묘는 티베트의 타시룬포사(티베트불교 황모파의 대본 산)를 모방했다고 하네요.

아이고!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저는 또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이경규 아저씨의 복수혈전이 마구 떠오르면서, '복수를 하고 생을 마감한 수미의 묘'가 연상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주인공이 된 '수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단한 여고수일 겝니다.(전국의 '수미'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의 엉뚱한 상상을 이해해 주세요~)

표를 사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도 역시 입장권 가격이 가이드북에 고시된 것보다 쌉니다. 겨울은 워낙 비수기라, 개방되지 않는 전시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타종승지묘와 마찬가지로, 정문을 통과하면 바로 비석 세 개가 세워진 작지만 높은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이 비석 건물을 뭐라고 지칭하는지 모르겠으나, 저는 편의상 '비석전(碑石殿)'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석전 앞에 향로만 놓여 있던 보타종승지묘와 달리 깃발도 줄지어 서 있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소책자 내용 빈약, 제대로 된 안내 아쉬워

▲ 수미복수지묘의 정문과 정문 바로 안의 비석전
ⓒ2006 윤영옥
이 비석에는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중국의 유적지들을 돌아다니면서 참 아쉬운 것 중 하나가 해당 유적지를 설명하는 안내 책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당 자치구가 관광용 안내책자, 지도 등을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저라면 무료가 아니라 돈을 지불하더라도 기꺼이 살 용의가 있습니다만, 중국에서는 아직 그러한 홍보나 서비스 개념이 별로 없는 듯합니다.

아차, 있는 곳도 있습니다. 천단 공원에 소책자가 있기는 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기꺼이 돈을 주고 살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 사긴 했지만 솔직히 조금 화가 났습니다. 돈을 받고 팔았다는데 화가 난 것이 아닙니다. 내용이 문제였지요.
 
A4용지 한 장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작고 내용 없는 소책자는 무성의할 뿐더러, '이 사람들이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구나'라고 느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북경동물원과 원명원(청나라 융성기때 지어진 347만㎡ 면적의 황제 별장)의 소책자는 유료이긴 했지만 그럭저럭 괜찮았고, 무료 소책자는 자금성에서만 보았네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수미복수지묘로 가보겠습니다. 수미복수지묘의 비석전을 지나 본전(本殿)을 향해 올라갑니다. 이곳은 깔끔하게 계단으로 정리되어 있던 보타종승지묘와 달리 자연을 많이 살려 흙길과 바위를 밝고 올라가야 합니다. 나지막한 산을 오르는 기분이지요.

예전에 북경의 옹화궁(雍和宮)에서 보았던 낯익은 형태의 건축물이 보입니다. 옹화궁은 북경 시내에 있는 티베트식 사원입니다.
 
외팔묘(外八廟, 피서산장 외곽에 있는 여덟 개의 티베트식 사원) 사원들의 형태상 주요 특징은 중국식 사원과 티베트식 사원의 건축양식이 혼합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건축에 문외한인 제가 보기에도 참 흥미롭습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건물들이 묘하게도 잘 어울려 있습니다.

외팔묘 정신 따라 중국·티베트에 평화 깃들었으면...


 
▲ 화려한 문양의 티베트식 출입구와 코끼리상
ⓒ2006 윤영옥
갑자기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이 떠오릅니다. 티베트의 스님들이 정성 들여 곱게 만들어 놓은 만다라(힌두라와 탄트라 불교에서 종교의례를 거행할 때나 명상할 때 사용하는 상징적인 그림)를 중국 군인이 무참히 짓밟고 가던 장면.
 
청나라 시기만 해도 중국과 티베트는 사이좋은 관계였는데. 무엇이 이 두 나라(지금은 한 나라이지만)의 사이를 갈라놓았을까요. 티베트 양식과 중국 양식이 조화로운 이 외팔묘의 사원처럼 티베트와 중국 사이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 사람이 찾지 않는 건물은 점점 낡아갑니다.
ⓒ2006 윤영옥
어쨌거나 현재 수미복수지묘의 많은 건물들은 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아예 문을 걸어놓았고 관리인도 별로 없어 사원 내부는 고즈넉하다 못해 을씨년스럽습니다.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지 않는 건물들은 점점 초췌해져 갑니다.


 
▲ 수미복수지묘의 본전 역시 보타종승지묘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2006 윤영옥
수미복수지묘의 본전 역시 보타종승지묘와 마찬가지로 3층 건물이 가운데 법당을 둘러싸고 있는 回자 모양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만, 전시실은 개방되어 있지 않습니다. 입장권 가격이 낮은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지요?

 
▲ 수미복수지묘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탑
ⓒ2006 윤영옥
하지만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습니다.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앞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승덕에 온 보람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걸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일입니다. 얼마나 많이 보았나,
 
얼마나 많은 곳에 가 보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안에서 무엇을 느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그 '무엇'은 꼭 다른 어디론가 떠나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저는 제가 길 위를 걷는 행위를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도, 저 자신을 '여행자'라고 칭하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다만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길 위에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자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번자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03-04 12:35]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