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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떡, 우리만 먹기 아깝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9. 23:40

 

 

         "호박떡, 우리만 먹기 아깝네!"

 
▲ 호박고지와 강낭콩을 넣어 완성한 호박떡이다.
ⓒ2006 전갑남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차갑지만 낮 기온은 많이 풀렸다. 밭 가장자리에 심어놓은 유실수 가지치기를 위해 모처럼만에 텃밭에 나왔다. 묘목을 옮겨 심은 지가 햇수로 4년째다. 작년에는 살구나무, 매실나무, 자두나무에서 처음 열매가 열렸다. 올해는 더 많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가지를 쳐주며 모양새를 잡아주니 나무가 한결 시원해 보인다. 막 터져 돋아나려는 나무의 새 눈에는 봄맞이할 채비로 분주한 것 같다. 삐쭉삐쭉 내민 눈에 생명이 가득하다. 봄이 오고 있는 게 분명하다.

못생겨도 맛은 그만인 호박

한 시간 남짓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아내가 뭔가를 하느라 부산하다.

"당신, 뭐하려고?"
"이따 교회 갔다 오면서 멥쌀을 빻아오려고요."
"웬 멥쌀? 호박떡 하려는 거지?"
"하도 호박떡 노래를 부르니 한번 해보려고요."

▲ 늙은 호박을 길쭉하게 썰어 꾸둑꾸둑 말린 호박고지
ⓒ2006 전갑남
오늘따라 멥쌀을 담그는 아내의 표정이 봄날 같다. 이럴 때, 조금 도와주면 집안 분위기가 환해진다. 나는 얼른 다락창고에서 강낭콩을 꺼내왔다. 꾸둑꾸둑 말린 호박고지도 대령이다. 떡 안칠 시루도 끄집어내었다.

강낭콩과 호박고지를 물에 불리는 일로 호박떡 찔 준비가 끝났다. 강낭콩을 넣어 늙은 호박을 이용한 떡이라? 시루에 쪄내는 호박떡이 자못 기대가 된다.

나는 작년 텃밭 언덕배기에 호박을 꽤 많이 심었다.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았는데도 20통 남짓 수확했다. 풀이 무성할 때는 달려 있는지도 몰랐는데, 늦가을 숨죽은 풀숲에서 드러난 노란 호박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느낌이었다. 이렇게 수확한 늙은 호박은 여러 사람과 나누었다.

그동안 우리는 호박죽을 수차례 쒀먹었다. 쑤어 놓은 호박죽은 간단하면서도 든든한 아침식사로 안성맞춤이었다. 저녁 늦게 출출할 때는 간식거리로도 아주 좋았다.

늙은 호박을 쉽게 먹는 방법으로는 호박 꼭지 부분을 오래내고 씨를 발라낸 다음 대추와 꿀을 넣고 삶아먹으면 간단하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큰 들통에 푹 삶아 우러난 물과 속살을 파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못생긴 호박이라지만 맛을 보면 누구나 좋아할 음식이다.

늙은 호박은 이뇨작용에 아주 좋다고 한다. 몸에 부기가 빠지고, 소변을 시원스럽게 볼 수 있다고 그 효능이 알려져 있다. 바타민A가 풍부하여 피부 미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해독작용이 있어 술 마신 뒤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가난한 시절 호박떡에 대한 추억

나는 예전 어머니가 호박떡을 해주셔서 먹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겨울철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는 늦은 저녁시간에 호박떡은 최고의 먹거리였다. 포만감을 채워주기도 했지만 착 달라붙는 맛은 궁금한 입을 즐겁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는 왕골을 이용하여 돗자리를 짰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쉼 없이 돗자리 짜는 일에 매달렸다. 아버지는 죽침에 왕골을 감아서 지르고, 어머니는 바디를 내리치며 돗자리를 짰다.

부모님은 농한기에도 일손을 놓지 않고 돗자리 짜며 부업삼아 일을 하셨던 것이다. 돗자리 짜는 일은 궁한 살림에 돈 푼깨나 만질 수 있는 일로 힘드신 줄도 모르고, 열심히 하셨다. 5일장이 서는 날에는 그동안 짜놓은 돗자리를 팔아 가계에 보탰다. 그 당시 우리 부모님께서 얼마나 애쓰시며 자식을 키웠는가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돗자리를 짜는 바쁜 틈에도 어머니는 저녁을 지을 때 고구마를 쪄서 간식을 준비하였다. 그러다 가끔은 호박떡을 찌기도 했다. 호박떡을 먹을 때는 고구마를 먹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식구 많은 집에서 오순도순 모여 먹었던 뜨끈한 호박떡! 그 때는 뭣을 먹어도 맛있었지만, 특히 달짝지근한 호박떡은 얼마나 맛이 있었던가?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먹으라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호박떡을 아내와 함께

▲ 호박떡을 만들기 위한 재료
ⓒ2006 전갑남
오후 늦게 아내가 멥쌀을 빻아왔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호박떡을 찔 시간이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내심 호박떡을 하려고 준비한 모양이다. 늙은 호박 반 통은 푹 삶아 먹고, 나머지는 껍질을 벗겨 길쭉하게 썰어서 꾸둑꾸둑 말렸다. 호박고지와 강낭콩 그리고 멥쌀이 호박떡을 만드는 주재료이다.

▲ 물에 불린 호박고지와 강낭콩을 흑설탕으로 졸이다.
ⓒ2006 전갑남
▲ 흑설탕에 졸인 호박고지와 강낭콩
ⓒ2006 전갑남
▲ 멥쌀 가루에 버무린 호박고지와 강낭콩
ⓒ2006 전갑남
▲ 시루에 안친 재료이다.
ⓒ2006 전갑남
▲ 시룻번으로 막고 중탕으로 찌면 호박떡은 완성된다.
ⓒ2006 전갑남
아내는 물에 불린 호박고지와 흑설탕을 섞어 약간 졸인다. 그러면 호박에서 나는 풋내를 없애고 달짝지근한 맛이 더해진다고 한다. 강낭콩도 같은 요령으로 졸이면 맛있다고 한다.

시루 밑구멍은 고구마를 썬 조각으로 막는다. 소금을 약간 넣은 멥쌀에 호박고지와 강낭콩을 골고루 섞은 다음 시루에 켜켜이 안쳤다. 김이 새지 않도록 시룻번을 개어 붙이는 것으로 일이 끝났다.

긴 시간 걸리지 않고 맛있는 호박떡이 완성되었다. 뚜껑을 열어 하얀 김을 맡아보니 단내가 난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럽다. 아내가 큰 접시에 부어놓고 조금 떼어 한입 건네준다.

"호박과 강낭콩이 씹히는 맛이 달짝지근하고 아주 맛있는 걸. 우리만 먹기 아까운데. 윗집에도 갖다 드리지?"

아내는 그러지 않아도 갖다 드릴 참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색다른 음식을 하면 늘 윗집과 나눠먹는다.

예전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모처럼만에 해먹은 호박떡이 그런 대로 괜찮다. 새봄에 만들어 먹은 별식으로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 같다.

[오마이뉴스 2006-03-08 22:21]    
[오마이뉴스 전갑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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