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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흥정놀이'의 천국, 북경 '왕푸징'

향기男 피스톨金 2006. 3. 13. 23:46

 

     '흥정놀이'의 천국, 북경 '왕푸징'

 

 오늘은 '왕부정(王府井)'에 대해 써야겠다 마음먹고 보니 왜 이제야 왕부정을 떠올렸는지, 지나치게 늦은 감이 듭니다. 왕부정은 북경에서 매우 유명한 관광지일 뿐만 아니라 제가 아주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왕부정은 중국어 발음으로 '왕푸징'이라고 합니다. 중국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는, 아마 왕부정이라는 우리식 한자음보다는 왕푸징이라는 현지 발음이 더 익숙하실 겁니다. 저도 앞으로 왕푸징이라고 하겠습니다. '왕부정'으로는 도저히 '왕푸징'의 느낌이 나지 않거든요.

▲ 북경반점 옆 왕부정대가 초입에는 이곳을 알리는 커다란 간판이 있습니다.
ⓒ2006 윤영옥
왕푸징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유리창(琉璃廠)은 한국의 인사동과 비슷하고, 서단(西單)은 명동과 비슷하고, 대책란가(大柵欄街)가 남대문 시장과 비슷하다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중앙로에는 최신식 쇼핑몰과 백화점이 즐비하지만 바로 그 뒤에는 중국만의 색깔을 가득 담고 있는 골목길이 이어져 있고, 왕푸징에서만 볼 수 있는 특화된 볼거리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한창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과 황혼의 여유를 즐기는 중년의 어르신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 생김새 전혀 다른 외국인과 내국인이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활보하는 자유로운 곳, 잠깐 왔다 떠나가는 관광객들과 이 땅에 머무르고 있는 토박이들이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왕푸징입니다.

북경에 왔으면 꼭 왕푸징에 가야하는 이유. '부르는 게 값'이라는 중국의 흥정문화(?)를 맛보기 위해서 왕푸징에 가야합니다.

 
▲ 다양한 기념품들이 있으니, 재미있게 흥정해 보세요.
ⓒ2006 윤영옥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대개 그렇지만, 특히 중국의 관광 기념품들은 바가지요금이 심합니다. 손님이 값을 깎을 것을 대비해서 아예 처음부터 두세 배의 값을 부른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그게 더욱 심해져서 열 배까지도 값을 부른다고 하는데, 중국 현지에서 오래 산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물건의 적정가가 어느 정도 되는지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물건을 흥정할 때는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는 손님과 최대한 이윤은 남기려는 장사꾼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지요. 하지만 그 신경전도 왕푸징에서는 하나의 '놀이'가 됩니다.

왕부정대가(王府井大街) 초입의 북경반점에서 북경백화점 쪽으로 걷다보면 왼쪽에 '왕부정소흘가(王府井小吃街)'라는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있는 골목이 있습니다.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각종 꼬치구이와 간단한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죽 줄이어 있으며,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시 오른쪽 골목에 관광 기념품들을 파는 노점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일단 한번 발걸음을 들여놓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워낙 사람도 많은데다가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장사꾼들의 호객 행위가 끊이지 않아 정신이 없거든요. 여기에서 파는 물건이 품질이 좋다거나 실용성이 높다는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북경 방문을 '기념'하기 위한 것 아닙니까.

찬찬히 둘러보시고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먼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인이 알아서 눈치를 채고 값을 부를 것입니다.
 
그 가격에서 '이 물건이라면 이 정도는 줘도 되겠다'는 하한선을 정하세요. 그리고 그 값의 절반을 부르세요. 여기서부터 흥정이 시작되는 겁니다. 만약 주인이 안 된다고 하면 주저하지 말고 뒤돌아 가세요.
 
분명 주인은 다시 잡을 테니까요. 사실 냉혹하게 가격을 깎다보면 마음속으로 '내가 조금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측은지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의 상인은 어쨌거나 손님보다는 한수 위에 있으니까요.

제가 갔을 때, 제 일행이었던 교수님 한 분은 처음에 130위안이라는 향꽂이를 30위안에 깎아서 사셨습니다. 그런데 돈을 지불하자마자 바로 옆 가게 주인이 “난 20위안에 팔 수도 있는데”하고 놀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다 같이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조금 비싸게 샀다고 억울해하지 마세요. 가위바위보나 007게임 같은 간단한 놀이에서도 엄연히 승자와 패자는 있잖아요? 비록 왕푸징에서의 흥정놀이는 대부분 파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지만요.

왕푸징에 가야하는 두 번째 이유. 밤거리의 낭만을 즐기고 싶을 땐 왕푸징에 가야 합니다. 한국대사관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대사관이 많아, 이국적이고 화려한 바와 술집이 많은 걸로 유명한 삼리둔(三里屯)의 카페 골목도 밤에 놀기엔 좋은 곳입니다.
 
그러나 삼리둔의 카페골목은 값이 너무 비싸고 술집 호객행위가 지나쳐 약간은 짜증이 날 정도이며, 무엇보다 끝없이 따라다니며 동냥을 하는 아이들과 노인들로 인해 거리 보행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에 반해 왕푸징은 입구에서부터 차량이 통제되기 때문에, 보행자 자유구역입니다. 교통수칙을 전혀 준수하지 않아 무법천지인 중국의 길거리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왕푸징은 행복한 곳입니다.

▲ 밤거리의 노천카페. 좋은 사람과의 즐거운 대화가 있어 더욱 빛나는 곳입니다.
ⓒ2006 윤영옥
왕부정대가의 한 쪽엔 깔끔한 테이블과 의자를 갖다 놓아 음료나 술을 마시며 쉴 수 있는 매점이 있습니다. 각 매점마다 조금씩 분위기는 다르지만 구획정리를 잘 해놓아 전혀 산만하지 않습니다. 시원한 밤공기를 느끼며, 하루 종일 걷느라 괴롭히기만 했던 지친 다리를 쉬게 해주세요. 맥주 한 잔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지요?

왕푸징에 가야하는 세 번째 이유. 중국의 놀랍기 그지없는 식재료를 보고 싶을 땐 왕푸징에 가야 합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던 왕부정소흘가의 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과일사탕이 보일 것입니다. 과일을 썰어 꼬치에 꽂아 녹인 설탕을 입힌,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먹거리입니다.

전혀 놀랍지 않다고요? 자, 그럼 그 건너편 가게를 보세요. 전갈과 해마가 줄줄이 꽂혀 꿈틀대고 있는 꼬치가 보일 것입니다. 그 꼬치를 어떻게 조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꼬치에 꽂혀 있을 당시에는 아직 살아있답니다. 윽! 사진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가니 주인아저씨가 하나를 뽑아 제 얼굴에 쓱 들이미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던지요.

왕부정소흘가의 꼬치들도 놀랍지만, 더더욱 압권은 꼬치 야시장입니다. 왕부정대가를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사거리가 하나 나오는데, 그 사거리의 왼쪽 건너편 골목에는 일정한 크기와 모양의 포장마차들이 줄을 맞춰 서있습니다. 오후 5시쯤 되면 서서히 장사 준비가 시작되고, 이윽고 어둠이 내리면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됩니다.

이 꼬치 야시장은 왕푸징의 명물입니다. 저녁이 되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 앞에서 인산인해를 이루지요. 하지만 그 꼬치를 사 먹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들입니다. 그 꼬치들을 보고 있으면 차마 먹을 엄두가 나지 않거든요.

정말 별의별 것이 다 있습니다. 뱀, 개구리, 참새, 지네, 귀뚜라미, 메뚜기, 굼벵이 등등은 그럭저럭 많이 듣고 TV에서도 보았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꼬치노점상의 마지막 집에서 불가사리를 보았을 때,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 한껏 자태를 뽐내며 먹으라 유혹하지만(?) 차마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2006 윤영옥
저와 같이 갔던 교수님들이 각자 다른 꼬치 한 가지씩 도전해보자 하여, 한 분은 개구리꼬치, 저는 소라꼬치, 다른 한 분은 안전하게(?) 과일 사탕, 또 한 분은 코코넛 비슷하게 생긴 어떤 과일 화채를 먹어보았습니다.

무지 달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던 과일사탕은 의외로 덜 달아 맛있었고, 과일 화채는 별 맛은 없었지만 먹을 만 했고, 제가 먹은 소라꼬치는 비린내가 심하고 양념이 입맛에 맞지 않아 먹기가 괴로웠습니다.
 
개구리꼬치는, 어린 시절 시골 개울에서 잡아 구워먹던 그 맛을 기대했다고 하셨지만, 개구리의 맛도 한국 개구리의 맛과 같지 않고 게다가 조금 덜 익혀주었다고 하네요.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렸습니다.

왕푸징 야시장에서 꼬치 드실 분들은, 넘치는 도전의식을 주체하지 못해 꼬치로나마 해소 해야겠다 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안전하게 양고기나 오징어다리 구이 같은 것을 드시기를 당부합니다.

어떠셨나요? 왕푸징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시나요? 북경에 오면 꼭 왕푸징에 가야 하는 이유. 충분하지 않나요? 하지만 아쉬운 건 말이죠, 왕푸징은 한번 잠깐 왔다가는 것보다는 가면 갈수록 자꾸자꾸 더 좋아지는 곳이라는 거죠.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뒤떨어지고 지저분하다는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씻어낼 수 있는 동방신천지 같은 커다란 위락 시설이나 중국의 교보문고라 할 수 있는 왕부정 서점, 중국의 미술사조를 느낄 수 있는 중국미술관, 중국 서민들의 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호동(胡同) 뒷골목 등을 하루에 다 볼 수는 없을 테니까요.

덧붙이는 글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번체로 표기하였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03-11 19:00]    
[오마이뉴스 윤영옥 기자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아다지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