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르페르)
기나긴 4년, 월드컵을 간절히 기다린 사람은 비단 그라운드 위에서 경기를 벌일 11명만은 아니다. 신바람 나는 축제는 언제나 스타디움 밖에서도 펼쳐졌다. 한 달쯤 뒤면 세인의 이목은 독일로, 첫 경기가 열리는 프랑크푸르트로 집중될 것이다.
한국은 6월 1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아프리카의 복병 토고와 일전을 벌인다. 지난 대회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물리치며 돌풍을 일으켰던 것처럼, 토고도 이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승패가 모든 것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다. 훗날 돌이켜보면 무언가에 즐겁게 몰두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것이다.
독일에는 '프랑크푸르트'란 지명을 갖고 있는 도시가 2개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럽 금융과 교통의 중심지이자, 괴테의 도시는 '마인 강변에 있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다. 물론 축구 경기도 이곳에서 열리며, 차두리 선수의 소속 팀인 'SG 프랑크푸르트'도 여기에 연고를 두고 있다.
유럽 같지 않은 도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연일 들락날락 거리는 비행기로 부산스럽다. 한국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독일의 루프트한자항공까지 직항이 3개나 있다.
그런데 정작 도시 안에는 듣기만 해도 알 만한 특출한 볼거리가 없다. 대규모 메세(박람회)가 개최될 때만 관심을 끌 뿐이다. 지난해 도서전에서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받아 신문과 방송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교회의 삐죽 솟은 첨탑을 제외하고는 높은 건물을 발견하기 힘든 유럽에서 프랑크푸르트는 눈에 띄는 마천루를 몇 채나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도시다. 이 건물들은 대개가 은행이다. 처음에는 고층빌딩이 빚어내는 유럽답지 않은 경관에 실망하게 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층빌딩이 낮은 건물들과 이뤄내는 조화로운 모습에 놀라게 된다.
독일 상업, 금융의 중심이었던 프랑크푸르트가 유럽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마인 강 덕분이었다. 수운 교통이 발달했던 탓에 사람과 물자가 몰려들었다. 전후 서독의 수도가 될 뻔했으나 국회 투표에서 아쉽게 본(Bonn)에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2차 대전 도중 폭격을 받기 전까지는 독일의 여느 도시들처럼 아름다운 중세도시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고 괴테가 태어났던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는 중앙역을 빠져나가 구시가까지 뻗은 카이저 거리를 걸었다. 괴테의 동상과 마주한 뒤 괴테 생가까지 가는 동안 이곳에 남아있는 세월의 흔적과 만났다. 때마침 정각이 되자 괴테가 세례를 받았던 교회에서 종이 울렸다.
괴테가 꽃피운 문화의 도시
괴테는 천재였다. 그가 손대지 않은 학문이 없을 정도다. 문학을 필두로 해부, 생리, 색채, 법률, 식물, 미술 등 '박학다식'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파우스트'를 쓴 작가로 생각하지만 독일인들은 최고의 인자(仁者)로 꼽는다.
괴테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3층짜리 생가는 예전 모습으로 복원돼 있다. 아버지로부터는 학문과 그림에 대한 식견을, 어머니로부터는 낙천적인 기질을 물려받은 괴테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집은 컸고 방도 많았다.
서재에는 책이 가득히 꽂혀 있었고, 어떤 방에는 어렸을 때 누나와 갖고 놀았다는 인형도 있었다. 주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유품은 그대로 남아 그의 숨결을 전달했다. 괴테는 생전에 '프랑크푸르트는 문화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지만, 그의 출현 이후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의 중심가인 뢰머 광장에는 계단 모양의 지붕을 얹은 건물 3동이 나란히 서 있다. 한때는 시청사로 쓰이기도 했다는데, 현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나 휴식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광장 뒤편에는 비록 이름뿐이었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열렸던 웅장한 성당이 있다. 왕관을 쓴 황제는 광장에서 축하연을 진행했는데, 차범근 감독이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한 뒤 이곳에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어두운 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백화점 옥상의 노천카페에 들렀다. 프랑크푸르트의 낮이 깨끗하고 정결했다면 밤은 낭만적이었다. 스스럼없이 키스하는 연인을 지나쳐 빌딩에서 나오는 현란한 빛의 향연을 감상했다. 밤은 조용히 저물어갔다.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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