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Travel)이야기들/재밋는 영독프랑스

독일 이색지대,5월의 크리스마스

향기男 피스톨金 2006. 5. 5. 14:50

 

                  독일 이색지대

 

       아주 특별한 5월의 크리스마스

 

Vienna
 


Vienna
 



 

괴테가 사랑했던 빌레머 부인이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는 항상 어른이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다시 아이가 된다.'고. 크리스마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 가운데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유쾌한 날이었나 보다. 유럽인에게 '민족 최대의 명절'은 설이 아니라 크리스마스이니 마땅히 그랬을 것이다.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면 조금씩 커지듯이 독일 사람들은 4주 동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축제의 열기를 고조시켜 나간다. 12월의 각 일요일을 '강림절(Advent)'이라 하는데, 네 번째로 돌아오는 주일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아이들은 첫 번째 일요일부터 하루씩 날짜를 떼게 돼 있는 '강림절 달력'을 보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강림절 기간에 각지의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트리를 꾸밀 예쁜 장식품을 구입하고 따뜻한 와인을 마시면서 흥을 돋운다.

 

로텐부르크의 크리스마스 용품점 '케테 볼파르트(Kaethe Wohlfahrt)' 내부에는 소중하고 고귀한 크리스마스가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주는 박물관이 있다.

 

4세기 이후 정착돼 유서 깊은 전통으로 자리 잡은 크리스마스는 시간에 따라 변화했고, 트리나 산타클로스 역시 지금과는 같지 않았다. 트리에 장식하는 물건들은 점점 화려해졌으며, 산타 할아버지의 표정은 온화하고 푸근해졌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파랑과 흰색 톤으로 단장된 실내로 들어가자 먼저 19세기 후반 트리가 눈에 띄었다. 트리로 사용되는 나무에 걸린 물건은 참으로 다양했다. 카드보드지로 만든 그림, 동그란 구, 짧은 양초, 조잡한 인형 등 그때그때 유행이 존재했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는 독일어로 '신성한 밤(Weihnachts)'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그만큼 예수의 탄생을 대하는 태도가 경건하고 종교적이었다. 산타클로스도 선한 사람이 아니라, 1년간의 선행과 악행을 가늠해 상과 벌 가운데 한쪽을 택하는 무서운 신의 대리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전시된 산타 모형들은 하나같이 무뚝뚝한 얼굴을 한 채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산타의 놀라운 변신은 '코카콜라'사가 겨울에 수익을 증진시키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그를 광고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자본에 의한 문화유산의 왜곡일 수 있겠지만, 그 전략이 밉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방긋 웃어주는 정겨운 산타할아버지가 맘에 드니까 말이다.

 

 


▶ 여행정보

 

- '로텐부르크 옵 데어 타우버' 역에서 도보로 20분. 구시가 중심인 마르크트 광장에서 도보로 3분.

- 2006년 1월 9일부터 3월 31일까지는 토ㆍ일, 4월부터 12월까지는 매일 운영 오전 10시∼오후 5시30분

- 어른 4유로, 어린이(6∼11세) 2유로, 가족 7유로

www.weihnachtsmuseum.de, ☎ 98.61.40.93.65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

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끝)

 

 

         독일 이색지대 프랑켄 와인,

 

          그 맛의 유혹에 빠지다

 

[연합뉴스 2006-05-04 16:04]

 


(연합르페르)

독일은 신이 내린 아름다운 땅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대비된다. 음식 문화에서도 풍부하고 화려한 면면을 자랑하는 두 나라를 지척에 두고 있는 탓에 으레 '음식이 맛 없는' 나라로 낙인찍히고 만다. 그 와중에서 어렵사리 세계 최고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소시지'와 '맥주'다. 이 목록에 과감히 '와인'이라는 항목을 추가하고자 한다.

 

사실 최근에 유행을 타고 있는 수제 맥주 전문점은 모두 독일 음식점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브루어리(Brewery)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온 장인들이 전통 맥주와 소시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으로 미루어봐선 독일 음식이 고정관념처럼 질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턱없이 부족한 독일의 일조량은 적포도주용 포도의 재배를 허락지 않는다. 또한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의 와인을 주조하기에도 환경이 적합하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씁쓸한 맛의 화이트 와인뿐이다.

 

불행 중 다행히도 이러한 종류의 포도를 길러내기에는 독일 남서부만한 곳이 없다. 그 중에서도 뷔르츠부르크는 깊으면서도 떫은 맛으로 잘 알려진 프랑켄 와인의 생산지다. 늘씬한 일반 와인 병과는 달리 주머니 모양으로 둥글둥글하면서도 불룩한 병이 인상적이다.

 

뷔르츠부르크를 다스리는 주교의 궁전이었던 레지덴츠에는 세 가지 보석이 있다. 티에폴로의 천장 프레스코와 황제의 방, 주교가 애음했던 와인이다. 눈에 띄지 않는 레지덴츠의 와인 저장고를 가려면 암흑의 지하통로를 통과해야 한다.

 

레지덴츠의 건설을 명한 주교는 지하에 자신만을 위한 훌륭한 와인 저장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인들에게서 공물로 와인을 걷어 들여 채울 작정이었다. 저장고는 2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며, 화이트 드라이 와인(White Dry Wine)과 아이스 와인을 빚고 있다. '와인 성당(Wine Cathedral)'이라 불릴 만큼 광대한 면적을 뽐낸다.

 

이곳의 와인 숙성통은 익숙한 원형이 아니라 타원형이다. 더 많은 와인을 저장하기 위해 고안된 디자인이다. 숙성통 앞으로는 황홀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촛불이 길을 비췄다. 통나무와 양초, 와인의 조합은 푸른 바다 위의 휴양지처럼 낭만적이다.

 

지하에는 와인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책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지닌 와인을 전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쇠창살로 막혀 있어서 만지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포도를 수확하는 가을이 되면 실외에서 작업해 안으로 들여올 수밖에 없다. 레지덴츠 옆 철학대학에는 학생들이 학업에 정진하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와인 향기가 진동한다. 이 시기에는 저장고에서도 '후각'의 힘을 막을 수 없어 와인을 무료로 제공한다. 독일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한다면 또 한 차례의 와인 파티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 여행정보

 

- 뷔르츠부르크 역에서 차로 10분. 시내에 있는 레지덴츠의 지하에 위치해 있다.

- 투어는 무료이며, 미리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www.hofkeller.de, ☎ 931.30509.31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ㆍ글/박상현 기자(psh59@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끝)

 


 

                  독일 이색지대

 

           행복한 동심으로의 초대

 

 

[연합뉴스 2006-05-04 15:57]

 


(연합르페르)

독일은 박물관의 나라로 불릴 만큼 신기하고 재미있는 박물관이 많은 곳이다. 세밀하고 꼼꼼한 국민성 탓인지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모아놓은 테마 박물관이 도시마다 몇 개씩 있다. 또한 병이 불룩한 독특한 모양의 와인과 수많은 맥주도 독일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존재다.

 

어린 시절에는 좋은 장난감 하나만 있으면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어린이들의 친구인 장난감과 함께라면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새로운 녀석이 등장해 환심을 사기 전까지는 영원히 독점하고픈 욕심에 사로잡혔다. 뉘른베르크의 장난감 박물관에서는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추억을 의식으로 끄집어내 준다.

 

뉘른베르크는 중세 시기인 14세기 무렵 장난감의 도시로서 인형 만드는 장인(Dockenmacher)을 육성했다. 교역의 중심지였던 터라 찰흙과 나무로 만든 인형은 독일 각지로 팔려나갔다.

 

수요의 증가가 자연스레 기술의 발전을 불러오는 것처럼, 장난감 장인들은 '뉘른베르크 부엌(Nuernberg Kitchen)'과 주석으로 제작한 완구를 생산해 지명도를 높여나갔다. 지금도 뉘른베르크는 '장난감의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1월 말에는 완구 박람회가 열린다.

 

르네상스풍의 박물관 안에는 희귀한 보물이 잔뜩 숨겨져 있다. 19세기 중반의 장난감부터 레고나 듀플로 같이 요즘 아이들이 갖고 노는 것까지 완구의 역사가 소상히 기록돼 있다. 서양의 장난감이 낯설기도 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대형 박물관에 들어갈 만한 자격을 지닌 기원전 장난감이 처음으로 손님을 맞는다. 부장품처럼 보이는 비둘기 모양 인형은 로마 시대 아동들의 놀잇감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현란하고 복잡한 장난감과 비교하면 형태가 매우 단순하지만 양옆에 부착된 바퀴가 '장난감'이란 확신을 심어준다.

 

앙증맞고 깜찍한 장난감이 계속해서 눈길을 끌었다. 과거 유럽 장난감들은 대개가 나무를 재료로 택했고, 지나치게 세세하고 정교하다 싶을 만큼 어른들의 세계를 완벽하게 축소해 놓은 것이 많았다. 아이도, 어른도 탐낼 만한 '조숙함'이 특징인 듯했다.

 

주방을 크기만 줄여놓은 전시물은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예술품 같아서 갖고 놀기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다. 탁자는 나무로, 식탁보는 천으로, 식기는 놋쇠로 만들어서 훗날 부인이 됐을 때를 대비한 예행연습용으로 적합해 보였다.

 

위층으로 올라가자 커다란 인형들이 큰 눈동자를 번쩍이며 관람객을 응시했다. 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인형들이 무섭고 거북했다. 영화 '사탄의 인형'에 나온 처키와 닮은꼴이라서인지 섬뜩했다. 인형은 착용한 복장만 다를 뿐, 표정과 생김새가 하나같이 똑같았다.

 

기차 모형도 '장난감'보다는 수공예 기술이 집적된 '작품'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에서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장면은 미니어처를 활용해서 실감나게 재현하듯이 장난감은 실제와 혼동이 될 정도로 흡사했다. 치밀하고 계획적인 독일인의 성격이 기술력으로 승화한 본보기인 셈이다.

 

 


좋은 박물관은 본래 언어를 알지 못해도 관람객이 이해할 수 있고, 흥미를 느끼게 한다. 뉘른베르크의 완구 박물관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몰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많다. 부모들이 동심의 향수에 빠질 동안, 꼬마 방문객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다락은 진짜 장난감으로 꾸며져 있다.

 

 

▶ 여행정보

 

- 뉘른베르크 역에서 도보로 5분.

-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오후 5시(토, 일요일은 오후 6시까지)

- 성인 4유로, 어린이 2유로

www.kubiss.de/kpz, ☎ 09.11.13.31.241

 


 

              독일 뷔르츠부르크,

 

         신이 너희를 행복케 하리라

 

[연합뉴스 2006-05-04 13:39]

 


(연합르페르)

뷔르츠부르크의 밤은 길었다. 중세시대부터 주교의 직할지였던 이곳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묵묵히 감내해야 했다. 후세의 자손들이 '암흑의 시기'라고 별명을 붙인 유럽의 중세는 종교의 권세 아래에서 위대하신 절대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때였다.

 

눈을 뜨고 세상을 주시할 수 있는, 신과 친밀한 대화를 나누며 고지(高地)에 사는 영주와 성직자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자유는 없었다. 욕구는 있었으되,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깜깜했고 우울했다.

 

뷔르츠부르크 최초의 주교인 킬리안(Killian)은 7세기 후반 원주민 켈트 족 어부들이 거주하던 마리엔베르크(Marienberg)에 성당을 세웠다. 13세기에는 성전의 사위를 방벽으로 둘러 요새화했다.

 

이 지역에 가톨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뷔르츠부르크 주교에게 부여된 영지는 점차 늘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평민들은 악의악식했다. 높은 세율과 고된 노동은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었다.

 

마르틴 루터에 의해 촉발돼 독일에 불어 닥친 종교개혁의 광풍마저 뷔르츠부르크를 비켜갔다. 봉기한 농민들이 마인 강(Main)을 건너 마리엔베르크로 올라갔지만 기다리는 것은 참혹한 죽음뿐이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종교의 세력은 주교가 거처를 옮기면서 서서히 허물어졌다.

 

중세시대를 한참 지난 18세기 예술을 사랑한 주교 쇤보른(Schoenborn)은 당대의 천재 건축가였던 노이만(Neumann)에게 새로운 궁전의 신축을 요청했다. 주교가 낮은 땅에 임할 즈음 이미 시민들은 근대에 익숙해져 있었다.

 

젊음과 보수의 어울림

 

인구의 20% 가량을 차지하는 대학생은 젊은 도시로 불리는 까닭이다. 엑스선을 발견한 뢴트겐을 비롯해 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한 이 대학의 명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90%에 이르는 절대 다수가 가톨릭을 믿고, 청교도 교회는 단 2개뿐인 보수적인 색채 역시 바뀌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행객이 뷔르츠부르크에서 눈도장을 찍어야 할 곳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주교가 살았던 최초의 성인 마리엔베르크, 훗날의 궁전 레지덴츠, 알테 마인 다리(Alte Mainbruecke)에서 시청을 관통해 역까지 이어지는 보행자 거리다.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자 가장 멀리 떨어진 마리엔베르크부터 들르기로 결정했다.

 

 


과거에는 무기고였던 프랑켄 지방박물관을 둘러보고 입구로 걸어갔다. 여느 요새처럼 입구는 터널이었으나 넓고 짧았다. 민중의 침입을 제외하면 스웨덴 군에게 한 번의 공격을 받았을 따름인 마리엔베르크는 2차 대전 중 미군의 기지로 쓰였다.

 

침략자에 대응하고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좁은 창문은 완전히 막혔고, 산책로는 위압적으로 좌시하고 있는 내성(內城)과 완전히 차단됐다. 마리엔베르크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여름에는 칼싸움을 재연하고 음악회가 벌어지거나 결혼식이 열린다고 했다.

 

성에서는 붉은색 삼각형 지붕들이 옹기종기 도열한 뷔르츠부르크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불쑥불쑥 튀어나온 교회를 제외하면 평평했다. 그마저도 시계가 있는 탑만 삐죽 올라가 있어서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

 

'로맨틱 가도의 출발점'이란 평판답게 낭만적인 풍광이 이곳저곳에서 배어나왔다. 갑자기 15층도 모자라 40층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의 아파트들이 부끄러웠다. '건축'의 핵심은 사라지고, '가격'이란 껍데기만 남은 형국인 탓이다.

 

레지덴츠는 마리엔베르크에 비하면 작지만 세련된 느낌의 건물이다. 'ㄷ'자 모양의 내부에는 방 300여 개가 있고, 이중 20개는 온전히 주교를 위한 것이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천국의 계단’의 아치형 천장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가져온 재료로 그린 거대한 프레스코가 있다.

 

화가 티에폴로(Tiepolo)는 대륙을 각기 다른 형상으로 신격화해 그림을 그렸고,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교의 주거지’라고 칭송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레스코가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쟁 중에 적국인 미군이 지붕을 덮어주었기 때문이다.

 

산업시설이 없어서 대기가 유난히 깨끗한 뷔르츠부르크는 시티 투어에 ‘싱싱한 폐(Green Lung)’라는 생경한 호칭을 달아놓았다. 그만큼 맑은 자연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마르크트 광장(Markt Platz)에서 따뜻한 와인을 홀짝이며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차갑고 순수한 공기는 가슴을 씻고 머리를 세척한 뒤 여유로움과 안온함을 선사했다.

 

 


                    독일 뮌헨,

 

         과거의 영화를 회복한 사자

 

[연합뉴스 2006-05-04 13:41]

 

 


(연합르페르)

세계적인 자동차 브랜드인 베엠베(BMW)의 로고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프로펠러를 떠올리게 하는 사등분된 원에 파랑과 흰색이 사이좋게 채색돼 있다. 그런데 베엠베의 본사가 있는 뮌헨에는 전차의 외관이 모두 파랑과 흰색이고, 거리에는 파랑과 흰색으로 양분된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깃발은 바이에른(Bayern)의 주를 상징하는 것이고, 뮌헨은 바이에른의 주도이다. 뮌헨 사람들은 검정, 빨강, 노랑의 삼색 독일기와 나란히 자신들의 기를 내걸거나, 국기는 아예 빼 놓고 바이에른의 기만 달았다.

 

뮌헨 사람들은 자신을 지칭할 때 항상 '독일'보다는 '바이에른'이란 단어를 선택했다. 스위스에서 독일로 들어오는 국경 표지판에는 커다랗게 쓰인 '자유국가 바이에른' 아래 '독일연방공화국'이 좁쌀만 하게 적혀 있다고 한다.

 

바이에른은 비스마르크가 19세기 후반 독일을 통일하기 전까지 존재했던 왕국의 이름이고, 현재는 주의 명칭으로 전용됐다. 바이에른 왕국의 문장 오른쪽에는 파랑과 흰색이 체크무늬처럼 짜여 있고, 왼쪽에는 용맹한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뮌헨 시내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사자 동상 역시 지방색을 강조하고픈 심정의 발로인 셈이다.

 

점차 영토를 확장하며 발전을 거듭했던 바이에른 왕국은 단단하게 무장한 동쪽의 프로이센에 밀려 주도권을 내줘야 했다. 그 결과 독일 현대사의 주연에서 물러나 조연으로 전락했다. 1차 대전 이후에는 우익 정당의 온상이 돼 히틀러가 활약하는 계기를 조성해줌으로써 공습을 받았다.

 

벼랑 끝에 섰던 뮌헨은 공교롭게도 정치보다 예술과 학문을 사랑했던 왕들 덕분에 '작은 그리스', '이자르 강의 아테네'라는 종전의 별칭을 얻으며 다시 일어섰다. 1972년 올림픽을 거쳐 이번 월드컵에서도 개막식은 뮌헨에서 열릴 예정이다.

 

독일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자연경관이 수려한 알프스 산맥과 호수를 등지고 있는 뮌헨은 볼거리와 젊은이가 많은 활기찬 도시로 변모했다. 사람을 권태롭게 만들지 않는 이곳은 예술과 자유를 애호하는 공기로 충만하다.

 


뮌헨 시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면 피나코테크(Pinakothek) 3곳을 비롯한 박물관, 미술관을 구경하거나 마리엔 광장(Marien Platz) 주변의 중심가에서 번잡함과 다이내믹함을 경험하는 일 사이에서 적절하게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마리엔 광장 앞에는 오전 11시마다 사람 크기의 인형이 나와 춤을 춘다는 신 시청사(Neues Rathaus)가 위치했다. 고딕 양식의 뾰족한 첨탑과 미려한 외부장식이 오래 전 건물로 유추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고풍스럽게 단장한 주변과 더불어 예스럽게 느껴지는 착각이 들었다.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가 열리는 도시답게 시내에는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하는 브로이하우스(braeuhaus)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평소와는 다르게 왁자지껄하고 사교적인 독일인들로 발디딜 틈 없이 혼잡했다. 평일임에도 자리가 없어서 큰 테이블에 여러 팀이 함께 앉아 시원하고 상쾌한 맥주를 즐겼다.

 

맥주는 밀로 만들어 부드러운 바이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필스너, 묵직하고 진한 둥클레스 등 3가지 종류가 있으니 취향에 맞출 수 있다. 뮌헨은 축제 기간이 아니라도 맥주가 끊이지 않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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